어쩌면 불행의 시작은 합법적인 거짓이었을지도

왼손으로 쥔 담배

by 눈꽃



담배를 처음 피워본 건, 그 해 만우절이었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식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 자고 뭐하냐 물었더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애써 숨기며 엄마 맞은편에 앉았다.


집을 팔아야 할 것 같다.

아빠가 사고를 냈다.

이혼할 거다.


누가 만우절을 만들었을까. 고약한 사실이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시계의 짧은바늘과 긴 바늘이 12 위에서 만나는 순간,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랐다. 엄마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가족 중 누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엄마의 결정은 절대적이었고, 최선이었다.


집에 어둠이 내리길 기다렸다가 몰래 밖으로 나갔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 아파트 단지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초봄의 밤은 질투 많은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어디에 연락할 데도 없고 누구와 연락이 닿은 들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질 리 없었다. 아직 문 닫지 않은 단지 내 지하상가에서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새하얀 담뱃갑에 파란 고양이가 한 마리 그려진 담배였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갔다. 비닐을 벗기고 은박 종이를 천천히 찢어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지인들이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내 손에는 어색함이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


- 처음 담배 깔 때, 하나는 거꾸로 뒤집어 놔.

- 왜?

- 이게 소원초야. 마지막 담배 태울 때 소원을 비는 거지.

-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져?

- 몰라. 그냥 빌어보는 거지.


몸에 좋지도 않은 걸 피우면서 별 짓을 다 하네. 누군가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처음 꺼낸 담배를 뒤집어 다시 제자리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다른 담배를 꺼내 왼손 검지와 중지에 끼우고 오른손으로 불을 붙였다. 깊게 들이마신 연기가 안으로 깊게 들어와 거칠게 가슴을 후벼 팠다. 잔기침이 났다. 쉬지도 않고 담배 필터에 입술을 대고 두 번 세 번 들이마셨다. 괴롭지 않았다. 숨을 뱉을 때마다 먹먹하게 맺힌 엄마의 통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끝까지 태운 담배를 바닥에 던져 슬리퍼로 짓이겼다. 담뱃갑을 열자 뒤집어진 한 개비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소원을 빌까.


나는 내 무력함을 너무도 일찍 깨달았다. 남들처럼 평범한 삶은 꿈꾸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밑바닥에 떨어진 나를 다시 위로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념을 배웠다. 체념을 배우며 마음의 무게를 덜었다. 사고를 낸 아빠를 질타할 수도 없었고 그런 아빠를 버리는 엄마를 말릴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걸 수습할 수 있는 몇 천만 원을 순식간에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뒤집어진 담배 한 개비에게 시간을 되돌려 달라는 소원을 빌어볼까 싶었다. 빳빳한 담뱃갑을 만지작대며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다. 담배는 울지 못할 만큼 슬플 때 응어리를 집어삼켜주는 존재가 되었다.


1800원짜리 담배 한 갑과 200원짜리 싸구려 라이터. 그리고 만우절.


이후로 많은 게 변했었다.


그 시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속앓이 방법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고 독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낡아빠진 2층 주택으로 이사하는 날, 아빠는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허름한 내 방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작은 쪽지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주었다. 남은 열 아홉 개비의 담배가 다 사라지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소원초는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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