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cm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언젠간 해보고 싶었던 일

by 눈꽃




10대의 내 머리는 어깨를 넘어본 적 없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칙으로 유명했던 고등학교에 진학했기에 머리는 얼마든지 길 수 있었지만, 항상 짧게 잘라냈다. 허리까지 찰랑이는 긴 생머리를 가진, 예쁘게 말린 파마를 한 애들 사이에서 나는 숏컷을 고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단발로 잘라냈던 머리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짧아졌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튼튼하게 자란 도토리 같은 머리가 되어 있었다.


귀밑 몇 센티미터로 제한된 것도 아니었고 잘 묶어 틀어 올리면 파마머리도 숨길 수 있었다. 애들은 내 짧은 머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쁘게 꾸미고 싶은 그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내 스타일은 유독 눈에 띄었다. 왜 머리를 매번 그렇게 짧게 자르냐는 물음에 그냥, 귀찮아서 라고 대꾸하고 말았었다.


실은, 나는 내 머리를 혼자 묶지 못했다. 고무줄로 휘휘 감아 대충 묶는 거야 할 수 있었지만, 손끝이 야물지 못해 금세 풀어지거나 한쪽으로 틀어지곤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엄마는 아침마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줬었다. 그게 좋았다. 엄마의 신경이 온전히 나를 향해 있던 그 순간이. 하나로 모아 잡아 적당한 높이를 잡고 끈으로 짱짱하게 묶어주면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풀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바쁘면 아빠가 묶어주기도 했지만, 엄마가 묶어주는 것만큼 시원시원하지는 못했다. 어린 나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빗어주는 아침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교복을 입기 시작하며 엄마는 내 머리를 묶어주지 않았다. 짧아진 머리에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았다. 굵직한 빗으로 몇 번 빗어 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의 손길에 나른해져 무겁게 내려앉던 눈꺼풀과 잘 묶어졌는지 내 얼굴을 돌려 온전히 눈을 마주쳐주던 엄마의 시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머리를 다시 길기 시작한 건 열아홉이었다. 손재주가 좋던 반 친구 하나가 어정쩡하게 긴 내 머리를 땋아줬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길면 훨씬 예쁠 거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 친구는 매번 내 머리를 빗겨주고 묶어주었다. 다정한 그 손길이 좋았다. 잃어버린 엄마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조금씩 머리가 길 때마다 뿌듯해하는 친구의 얼굴이 좋았다. 그 이후로 나는 머리를 길게 길어 늘어뜨렸다. 묶어주는 이가 없어 매번 풀어진 상태였다. 혼자 머리를 매만지는 재주는 영 늘지 않았다.


길어도 보고 온갖 색으로 물들여보기도 하고 파마도 해보고 다시 잘라보기도 하고. 머리 놀이가 질릴 때쯤, 모발 기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파마나 염색이 되어도 상태가 괜찮으면 가발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시 머리를 길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숱도 많고 길기도 한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목표 길이가 될 때까지 꾹 참았다. 그리고 2020년 12월 4일, 36cm의 머리를 잘라냈다. 언젠간 꼭 한 번은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이었다. 고무줄로 칭칭 동여 묶고 그 위를 서걱서걱 가위가 지나갔다. 목덜미가 허전했다. 아깝지 않냐는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말했다. 어차피 머리는 또 길어요.


머리를 빗어주고 묶어주는 과정에는 항상 사랑이 깃든다. 하다못해 쥬쥬와 미미의 머리를 만지작거릴 때도 즐거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내 모발로 만들어진 가발이 꼭 필요한 아이에게 가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애정을 듬뿍 받으면 한다. 항암치료로 텅 비어버린 마음을 가발로 덮어버리길 바란다. 예쁘게 땋아보기도 하고 고운 리본을 달아보기도 하면서. 36cm의 애정을 온전히 받아낼 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머리를 길기로 결심했다.










이전 08화어쩌면 불행의 시작은 합법적인 거짓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