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 박사님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제대로 된 ‘밥’을 먹은 게 언제인가 싶다. 코로나 때문에 생활이 엉망으로 뒤틀리고 일이 바빠지며 식사는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는 행위 그 이상이 아니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이나 컵라면, 레토르트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조리된 것을 테이크아웃하는 것.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거나 할머니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김치를 뚝뚝 잘라내 접시에 담는 일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하루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지 않는 건 더 오래됐고. 요리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든 걸 먹는 보람이 없으니 인덕션 앞에 서는 게 머뭇거려진다.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을 차려내고 나면 막상 만든 사람은 먹기 싫어진다는 말의 의미가 이해된다.
편식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거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것도 없다. 한때는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고 찾아갈 수 없으면 주문이라도 해서 기어코 먹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먹는 게 힘들어졌다. 살려고 꾸역꾸역 입에 넣어 씹고 삼키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너무도 많이 소모되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 밥을 먹는 게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작은 밥상에 대충 툭툭 올려둔 먹을거리, 손에는 핸드폰. 외롭기 그지없는 식사가 달가울 리 없다.
4년 동안 함께 살았던 친구는 매번 내 끼니를 물었다.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어? 혹은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녁에 뭐 먹을까? 오랜만에 외식할까? 밥을 묻는 친구의 물음표가 내 식욕을 자극하곤 했다. 입맛이 없더라도 친구와 마주 앉아 밥을 먹다 보면 한 그릇 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부러 더 씹기도 하고 맛있는 반찬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식사 시간이 그렇게 기꺼울 수 없었다.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볶음밥과 호박찌개, 어머님이 보내주신 오리탕과 멸치볶음, 무생채, 진미채 같은 자잘한 반찬. 세 팩에 만 원 하는 반찬가게의 반찬도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늦게 퇴근하는 내가 밥을 안 먹을까 봐 분홍 햄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뜨끈한 밥통에 넣어두고 출근하던 친구. 홀로 앉은 밥상 앞에서 나는 가끔 친구를 떠올렸다. 같이 먹는 밥이 그리웠다.
혼자서도 밥 다운 밥을 먹는 방법이 있을까. 라면 반 개를 끓여 후룩후룩 먹으며 고민했다. 뭘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켜먹는 것도 두 세입 넘기고 나면 더 손이 가지 않아 아까웠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맛있게 즐겁게 먹었는데. 그런 기억이 있으니 씹히는 밥알이 그렇게 퍽퍽할 수 없다. 먹방을 틀어놓고 먹는 사람들도 있대서 따라 해 봤지만 내게는 맞지 않아 금세 포기했다.
같이 먹는 밥이 먹고 싶다. 별다른 반찬 없어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 하나로 즐거울 수 있는 식사가 하고 싶다. 밥 한 공기를 앞에 두고 30분 40분 씹어 삼키는 끼니가 간절하다. 퇴근 후 함께 동료들과 식당이 문 닫기 전에 달려가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의미 없이 걸어 다니고 싶다. 그러려면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겠지. 얼른 다 끝나면 좋겠다.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는 발표가 나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반찬 삼아 거한 밥상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