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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May 09. 2021

엄마를 버린 딸

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마를 버려야 했다



  엄마와 딸. 이 두 단어의 조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깝나 싶으면 멀어지고, 멀어졌나 싶으면 다시 가까워지는 쉽고도 어려운 관계.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와 그에 상응하는 딸이 있다.


  나는 딸이지만 엄마가 없다. 엄마가 길게 늘어뜨린 실에 마음이 묶여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흔들렸었다. 내 손에는 언제나 가위가 들려 있었지만, 쉽게 그 실을 끊어내지 못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그 실이 몸과 이어져 있었더라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변두리에서 내가 빙빙 맴돌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엄마가 조정하는 실 때문이었다.


  일요일 아침이 싫었다. 밖에서 들리는 하하호호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덮었다. 아빠의 장난과 깔깔대는 남동생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만 괴롭히라는 엄마의 구박.  평화는 내가 밖으로 나가면 와장창 깨지곤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거실로 나가지 않았다. 급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참곤 했다. 어릴   ,  화기애애함에 섞이고 싶어 나가면 엄마는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가족 안에 어울릴  없다는 비참함에 젖곤 했다. 아빠와 남동생은 엄마의 눈치를 봤다. 내가 등장하지 으면 가족의 평화는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엄마는 내가  사이에 끼는  원치 않았다.  번을 반복한 주말 동안 내가 깨달은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갔다. 가족  아무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내가 집에 없으면 셋은 행복한 주말 아침을 보낼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엄마는 남동생을 예뻐했다. 모든 친척들이 엄마가 아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시무룩한 내 등을 다독여 달랬다. 느이 엄마는 왜 저리 아들을 예뻐한다냐? 나는 생전 아들아들 한 적이 없는디. 막내 삼촌은 대놓고 엄마에게 왜 그렇게 딸을 미워하냐 물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되레 화를 내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반박하곤 했다. 친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혈질인 큰엄마는 온 가족이 모인 곳에서도 사촌언니를 매질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적어도 나는 남들 있을 때 너를 그렇게 때리지는 않는다.”며 우월감에 젖었다. 정신적인 폭력으로 내 마음에 멍든 줄 모르고.


  아빠는 엄마와 나 사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했고 남동생은 방관자였다. 가족이라는 단어 꼭대기에는 엄마가 존재했고, 그 아래에서 다른 구성원들은 슬슬 눈치를 봐야 했다. 나는 매번 거기서의 탈출을 꿈꿨고 간간이 나를 향하던 아빠의 애정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친구들의 엄마가 부러웠다. 내가 가지지 못한 엄마를 가진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먼 세계의 일 같았다. 엄마에게 맞아 허벅지에 피멍이 든 채로 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짝꿍이었던 애가 내 다리를 보고 기겁했다. 왜 이렇게 멍이 들었냐는 짝꿍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엄마에게 맞았다고.



  “엄마가 때려?”

  “너는 엄마한테 안 맞아?”

  “나는 엄마한테 맞은 적 없는데.”



  엄마는 화가 나면 매를 들었다. 남동생은 제가 잘했든 잘못했든 엄마에게 싹싹 빌었지만, 나는 내가 맞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시험을 못 봤다거나 만화책을 보다 걸렸다거나 동생과 싸웠다거나. 공부 못하는 게 잘못인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만화책 보는 게 나쁜 건지 모르겠고, 동생은 나를 먼저 건드렸는데. 그런 이유로 맞아야 하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엄마가 제시하는 ‘맞아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너무 터무니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를 잡았고 건방지다는 이유로 더 맞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집에 있는 시간이 전보다 줄었고, 덕분에 엄마와의 마찰은 거의 사라졌다. 멀어지는 게 답이었다, 엄마와는.


  엄마가 쥔 실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견디며 살아야 했던 나의 지난 세월을 위한 용기였다. 엄마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살기 위해 도망갔다는 사실을 모른다. 엄마가 만든 감옥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야 했던 내 심정을 모른다.


  모든 부모가 부모는 아니다. 엄마가 없어야 살 수 있는 딸도 있다. 엄마와 딸, 그 관계성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끌어안고 평생을 살며, 아무 말 못 한 채 속으로 앓아야만 하는 딸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엄마가 없는 삶, 편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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