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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May 20. 2021

나의 낡고 늙은 티셔츠

비운 후에 보이는 것들




  한 번  손이 닿았던 물건은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아니, 그러는 편이었다. 물건 하나에는 적어도 이야기 하나가 담겨 있기에, 그걸 버리는 건 추억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 선생님 몰래 짝꿍과 주고받았던 작은 쪽지 하나까지 고이고이 서랍에 모셔 놓는 내 성격 때문에 방은 항상 포화상태였다. 책상과 침대, 작은 서랍장 하나로 꽉 찼던 작은 방에 구석구석 잡다한 기억까지 보관했다. 꽉 찬 방은 아무리 정리해도 복잡했고 구석구석 쓸고 닦아도 청소한 보람이 없었다.


  맥시멀 리스트. 빈 곳을 용납하지 못하고 0부터 100까지 꽉꽉 채워 넣어야 안정된다. 들어오는 건 괜찮지만 떠나는 건 안 된다.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해볼까 하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방에 들어가면 봉투를 반도 못 채우고 청소를 끝내곤 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갖가지 이유로 물건을 버리는 걸 거부했다. 언젠간 쓸 거야, 언젠간 필요할 거야. 그때 가서 내버리는 걸 후회하느니 지금 잘 가지고 있는 게 좋지.


  그 덕분인지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걸 기억했다. 소소하게는 친구의 생일부터 언제 누구와 무얼 하고 놀았는지까지. 1분 1초의 시간도 나는 버릴 수 없었다. 매 순간을 눈에 담고 머리에 저장했다.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우리 그때 뭐 먹으러 어디 갔었지,’ ‘그날 누가 엄청 웃기게 넘어졌었잖아.’ ‘너 그때 아파서 힘들어했잖아.’ 등등의 소소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한 이야기들. 친구의 결혼기념일까지 때가 되면 기억하고 연락할 정도니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기억력이 좋다고. 기억력이 좋다기보다는 나는 잊지 않으려 애써서 그런다.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 곁에 있으면 더 오랫동안 추억을 소유할 수 있다. 나는 물건뿐 아니라 기억까지도 맥시멀 리스트였다.


  버리기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았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사람과의 이별이 버림의 시작이었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난  집안 곳곳에 있던 아빠의 물건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보며 속상했다. 빈자리를 억지로 만들고 있는  같은 어른들의 행동에 화도 났다. 왜 다들 아빠를 지우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끌어안고 살아도 부족할 판에  떠난 사람을 지우는지. 긴긴 외사랑을 정리하는  손길도 그랬다. 쓰레기봉투의 반도  채웠던 과거의 나와 달리 가장  봉투에 추억을 집어넣고 그걸로도 부족해 봉투  장을  써야 했다.  버렸는  알았는데도 과거 흔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발견되는 추억은 쓰레기통에 박힌다. 좋아하던 아이돌 탈덕 때도 그랬다. 당근 마켓에 내다 팔고 버리고 주변에 나눠주고. 맥시멀 리스트는 미들 리스트가 되고, 미들 리스트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집이  비어 간다. 채움보다 비움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그때그때 버리거나 애초에 집에 들이지 않는다. 나중을 위한 물건은 없고 오직 지금을 위한 물건만 있다. 맞지 않는 옷은 물론 더는 어울리지 않는 옷까지 죄다 버렸다. 화사한 원피스와 귀여운 패턴의 치마로  있던 옷장은 이제 무채색의 바지와 티셔츠만 가득하다.  마저도 자주 입지 않는  과감히 버린다. 욕심과 집착도 함께 내다 버린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인연을 만드는데 힘을 쏟지 않고 떠나는 인연에 슬퍼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그걸  힘으로 밀고 당기는  의미 없다. 비우며 버리며 깨달았다. 최소한의 것만 남겨야 완전히 벗어날  있고 자유로워질  있다는 걸.



  계절의 변환점이다. 겨울과 봄을 거쳤던 옷을 집어넣고 여름을 위한 짧고 얇은 옷을 꺼냈다. 작년에 입었던  티셔츠가 올해는 입지 못하게 되었다.  부분이 늘어나고 누렇게 변해서, 낡고 후줄근해져서. 버려야 하는 옷을   추려내니 입을 옷이 없다. 정리를    티셔츠  벌을 주문했다. 현관에 너부러진   개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잠옷으로    입을  있겠다 싶어 다시 차곡차곡 개었다. 더위가  꺾일 때쯤, 티셔츠  벌은 쉽게 버려질 터다. 그러고 나면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겠지.


  가끔  멀리 두고  추억이 떠오른다. 그저 떠올리기만 해야 한다. 거기에 발목 잡혀 과거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 내일을 위해 무언가 소중히 간직하고 싶지 않다. 미래의 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을 위해서만 살고 싶다. 때문에 쓰레기봉투는 가득  있다. 버린   공간은 오롯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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