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으면 별 생각을 다 한다
1. 오늘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내 가방을 털어간다면 초콜릿바 두 개와 마이쮸 아홉 개, 그리고 나의 저주를 얻게 되겠지.
2. 들고 갈 책이 없어 오랜만에 작은 가방을 메고 나왔다. 코트 하나 입었는데도 덥다. 봄 같은 낮이다. 해가 지면 저를 잊지 말라며 겨울이 불쑥 튀어나오겠지. 이 빠진 호랑이처럼.
3. 요즘 꼬맹이of꼬맹이 수업에 보조로 들어간다. 원장님은 내게 병아리들이랑 친해져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뱃속에서부터 상냥을 끌어올렸다. 친절과 상냥은 다르다. 태생이 그리 상냥하지 못하니, 마스크가 고맙다.
4. 출근길에 보는 두 학교의 운동장이 시끌벅적하다. 그래, 애들이 학교로 돌아갔다. 2년 전 3월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애들은 역시 학교에 있어야 한다. 학원 와서 피곤하다고 꾸벅꾸벅 졸더라도 학교에 가는 게 맞다.
5. 제2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 직업을 가진 지 벌써 13년이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데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랄까, 고민된다. 나를 내던지는 용기를 13년 전에 두고 와서 그런다. 노력은 여전히 ing지만 자신은 없다.
6. 길을 걸으며 생각을 짤짤 털고 있는데 3학년 꼬맹이가 울타리 너머 놀이터에서 놀다가 나를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크게 인사한다. 늦지 말고 학원 와!라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저편으로 뛰어간다. 그래, 신나게 놀다가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