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달이 들어오는 봉투가 있어야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불요일은 여유롭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시켜놓고 얼음이 다 녹도록 천천히 마셔도 괜찮은 날이다. 바람이 거센 봄날, 3월의 마지막 화요일. 무언가 쓰기 위해서 나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오늘 또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한 후, 주변이 조금 어두워지자 글 몇 자 쓰려고 자리 잡았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온다. 나는 해년마다 중간고사 두 번, 기말고사 두 번을 치른다. 내 시험이라면 덜 긴장되고 한만큼 나오겠지 하는 자신감이라도 가질 수 있을 텐데, 내 시험도 아니고 아이들의 시험이라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 중간고사라는 꽃말을 가진 벚꽃을 보는 건 사치였다. 그냥 오다가다 보는 벚나무 몇 그루, 드문드문 떨어진 꽃잎 몇 장이 벚꽃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니면 밤 벚꽃을 보거나,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을 감상하거나. 그래도 어떻게든 봄을 즐겨보자고 억지로 시간을 내서 나가면 괜히 불안해진다. 내가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하고. 정작 자리에 앉아 문제를 풀고 마킹을 하는 건 내가 아닌데 말이다. 백날 천날 문제를 풀어주고 설명을 해줘도 아이들이 기억 하려 노력하지 않고, 문제를 풀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인걸 알면서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중간고사 기간은 지치고 힘들다. 차라리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과정이면 재미라도 있을 텐데, 아이들도 똑같은 내용이 계속되면 지루해한다. 시험기간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바짝 긴장되고 답답해지는데 다른 선생님은 그렇지 않나보다.
“선생이 될 필요는 없어.”
나보다 경력도 많고 실력도 좋은 선생님 하나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강사지, 선생님이 아니야.”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다달이 내는 돈 봉투가 아니면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직업. 꽤 오랜 시간동안 학원에서 일한 탓에 나도 잘 알고 있는 현실이었다, 빵점짜리 학생을 백점으로 순식간에 끌어 올리는 건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항상 내 마음은 아이들이 모두 높은 시험 점수를 받아오길 바라고 있다. 때문에 할 필요도 없이 애를 썼다. 공부하기 싫어 버티고 있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가르치는 것 또한 학원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후, 다시는 학원 일을 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지만 먹던 밥이 편하다고 다시 학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던 그 해. 주로 남학생들을 상대하며 가르치던 나는 여학생 들 앞에 처음 섰다. 또 다른 선생님 일을 하는 친구 하나는 내게 그랬다.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더 편하다고. 애교도 많고 싹싹하다며. 하지만 나는 순간 감정을 그 자리에서 털어내고 다음 날 웃으며 나타나는 남학생들이 더 익숙하던 상태였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여학생들 사이의 다툼도 중재해야 했고 말도 더 조심스럽게 뱉어야했다. 그 무리 안에 A가 있었다.
A는 수학을 못했다. 그냥 못한 게 아니라 간단한 사칙연산조차도 헤맬 정도로 숫자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래도 영어는 꽤 잘해 영어 등수는 상위권이었던 아이였다. 과목에 대한 편식이 심해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였다. A는 수학은 못해도 영어는 잘 하니까 괜찮아요, 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수학 점수를 물어보니 해맑게 웃으며 점수를 말하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절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A의 수학 점수는 7점이었다. 찍어도 그 점수는 안 나오겠다! 그 날부터 A와 나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A의 수학 점수를 올려놔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A와 다퉜다. 아이는 엉엉 울면서 하기 싫다고 버텼고, 나는 어떻게든 공부를 하게 하기 위해 옆에 앉아 A에게 화도 내고 달래기도 했다. 꽤 늦은 시간까지 A와 투탁거리고 속이 상해 앉아있는데, 원장님이 다가오셨다.
“자네, 욕심이 많네.”
“네?”
“애들 점수는 한 순간 오르지 않아. 다음 시험에서 5점 올리고, 또 그 다음시험에서 10점 올리면 되지. A가 이번 시험에서 바로 100점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나올 거라는 거 자네도 알지 않는가.”
원장님의 말이 맞았다. 수학 7점짜리 아이가 몇 주 공부했다고 해서 바로 100점을 받아오는 건 말도 안됐다. 하지만 A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A가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오를 거라는 걸. 할 수 있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 욕심의 상대였다. 보란 듯이 좋은 성적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순간 정상으로 아이를 끌고 올라가는 건 힘든 일이었다. 원장님 말대로 차근차근 올라가면 될 일이었다.
A는 난생 처음 수학 시험지를 받아들고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객관식은 찍고 서술형은 낙서를 해서 낸 OMR카드에 답을 채우고, 수식을 적었다고 했다. 아주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A는 기뻐했다. 처음으로, 제 힘으로 푼 시험지. A는 시험지를 내게 가지고 와서 이 문제는 제가 이렇게 풀었는데 틀렸어요, 이거는 실수해서 너무 아까워요, 하며 재잘댔다. A는 점수를 오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혼나고 눈물 쏟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 나와 공부했다. A는 차근차근 점수를 올렸다. 한순간에 꼭대기로 아이를 끌고 가려고 했던 내 욕심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함께 올라가면 됐을 일을.
아이들에게 강사가 아닌 선생으로 남고 싶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고, 많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해주면 된다. 단상에 올라, 칠판 앞에 서서 내용을 전달하는 강사가 되는 건 싫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도 없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선생이 아니라 강사가 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래도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다. 아이들보다 앞서 걷고 있는 선생(先生)이 아니라, 함께 걸을 줄 아는 선생이 되고 싶다.
A가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수학 빵점이에요. 거짓말 하나도 안하고 빵점이요. 선생님 다시 오시면 안돼요?”
“아, 제발! 공부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