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꽃 Sep 19. 2021

뮤지컬 HADES TOWN 하데스 타운 20210919

일주일 안에 뭐 달라졌겠습니까? 여전히 시우민이 좋아요












  0.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모처럼 연휴이니 갈 수 있는 공연은 모두 가기로 했다. 어제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와 뻗었는데 힘들다기보다는 빨리 일요일이 오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유가 뭐 있겠나, 내 최애 시우민을 보러 가는 날이니까. 특정한 날의 행복이 보장되어 있으니 이전의 날이 어쩌면 그렇게 잘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나를 화나게 만들고, 짜증 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용서되었다. 평소 같으면 단 5분의 지각도 허용하지 않는 선생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빨리 다니자~" 웃으며 답하고 다 못한 숙제를 쭈뼛쭈뼛 내밀어도 "수업 끝나고 남아서 하고 가야겠네?" 하며 용서해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찝찝하고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선생님이 관대해진 이유를 알고 있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은 "우리는 그분께 감사드려야 해."라며 시우민 이름 석자에 박수를 짝짝 쳤다. 덕질은 사람을 열심히 살게 한다. 이건 모든 덕후들이 고개를 끄덕일 문장이리라.



  1. 지옥 가는 길은 조금 흐려도 괜찮다.


  표를 찾으면서 추석 기간 특별 포카를 받았다. 역시 자본주의 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아는구나. 받으면서 감격했던 건 포카가 랜덤이 아니라는 거다. 앨범 까면서 토레카 받으면서 랜덤에 시달렸던 지난 시간을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슴은 반성해라ㅠ 최애 포카를 교환 없이 손에 쥘 수 있었던 오늘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


  오늘 자리는 8열 중블. 저번과 달리 훌쩍 뒤로 물러났지만, 엘지 아트센터는 모든 자리가 천국이라는 소리를 들어 큰 걱정은 없었다.  지난 공연 보러 가서 인터미션 때 괜히 8열 얼쩡 6열 오블 얼쩡대며 내 자리를 어디로 확정 지어야 할지 고민했었다. 결국 주변 여러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모두들 '무조건 중블!'을 외쳤다. 22일 공연은 오블로 가니 오늘은 조금 뒤로 가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보니 확실히 op석 맛을 보고 난 후라 자첫같은 만족감은 없었으나,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고 즐기기에는 좋을 자리였다. 8열은 자리와 자리 사이가 다른 열보다 조금 더 벌어져 있었고 팔걸이를 양쪽으로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오빠만 나오면 두 손 꼭 쥐고 보느라 내 어깨가 절로 어좁이가 되는데ㅠ) 중블이어도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시우민을 보기에 좋은 자리였다. (티켓팅 때도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는 나의 손버릇은 시우민의 동선이 주로 오른쪽이었다는 숱한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데스 타운 티켓팅에서도 시우민이 어디에 주로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였는데도 손가락은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였었다.) 망원경을 쓰기에는 너무 가깝고 쌩눈으로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 8열이었다. (내 시력은 좋은 편이 아니고 공연은 렌즈를 끼고 갔음. 결정적인 장면과 놓치고 싶지 않은 시우민의 모습은 망원경을 사용했다.)


  공연 보기 전까지는 <하데스 타운> 넘버를 들어도 와닿지 않았는데, 보고 난 후 매일매일 넘버를 챙겨 들었다. 특히 <Road to Hell>, <Wait for me>, <Way Down Hedestown>, <Chant>, <Our Lady of the Underground>가 베스트 5! 노동하러 가는 길에 발걸음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기분의 노래를 주로 들었다. 버전이 영어라서 아쉬웠지만 조만간... 한국에서도... 제발....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듣고 불러야 하잖아요? 당장 무대 위로 올라가서 회전무대 위에서 망치질하라고 해도 잘할 수 있을 정도로(?) 넘버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한 덕분인지 이번 공연은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전보다 많았다. 12일 공연을 보고 난 후에 뮤덕 선생님이 "공연 어땠어요?"라고 물었을 때, "모르겠어요. 그런데 내 새끼(=시우민) 진짜 잘생겼어요."라는 답을 했었다고 합니다. 송스루가 뭔지도 모르고 보러 가서 <하데스 타운>이 송스루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모든 뮤지컬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 아니구나(바보)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문화생활을 해야.... 아무튼, 12일과 달리 오늘은 무대 전체적인 구성과 흐름, 그리고 다른 배우님들의 연기도 더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내 눈이 저절로 오빠를 쫓아다닐 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2. 뮤알못의 뮤지컬 이야기


  2-1. 헤르메스

  12일은 최재림 배우님, 19일은 강홍석 배우님으로 공연을 봤다. 앞으로 보러 갈 공연도 두 분이 고루고루 번갈아가며 나오셔서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그 로마 신화의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이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다. 헤르메스는 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 든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하데스 타운>의 헤르메스는 신화 속의 헤르메스를 그대로 잘 반영했다. 인간의 세계와 지하의 세계를 오가며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때로는 극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자와 신발의 날개는 소매의 깃털로 표현했다. 최재림 배우님의 헤르메스는 진지하고 진중하게 극에 바람을 불어넣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디리케를 이끌어준다. 인자하면서도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딱 떠올랐다. 노래를 하는 장소(인간 세계 or지하세계)에 따라 분위기를 확 휘어잡아 확실한 '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강홍석 배우님은 챠카챠카~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약간 장난기 많은 헤르메스 같았다. 흥겹고 즐겁게 넘버를 부르는 모습이 내 머릿속의 헤르메스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얼굴에 장난기 가득 든 '신'의 모습! 헤르메스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 분 다 각각의 매력이 있고 극을 이끌어 가는 힘이 강했다. 2월 막공까지 달려도 두 헤르메스 중 누가 더 좋았다는 결론은 내지 못할 것 같다.


  2-2. 운명의 세 여신(모이라이 Moirai, 파르카이 Parcae)

  밤의 여신 닉스의 딸인 이 세 여신은 함께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실을 다루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어로 '실 짓는 이'라는 뜻의 클로토는 보통 셋 중 가장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인간의 운명을 이끄는 실을 잣는다. '제비뽑기'라는 뜻의 라케시스는 인간이 사는 생명의 길이만큼 방추에 실을 감는다. '불가피함'이라는 뜻의 아트로포스는 가차 없이 실을 잘라 수명을 결정하는데, 보통 가장 늙고 어두운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인간의 운명을 결정 짓는 세 여신은 <하데스 타운>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파워풀한 목소리, 악기와 노래의 조화, 화려한 의상(원래대로는 세 여신은 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극 중의 세 여신은 트리플 룩으로 비슷한 패턴의 천으로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다. 세 분과 찰떡같이 어울린다!)은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들어 준다. 저번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운명의 세 여신은 인간과 신에게 경고와 충고를 적절하게 섞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들에게 가야 할 길에 대한 힌트를 던져준다. 방해꾼 같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은 존재. 그게 운명 그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지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회전무대를 이용했는데, 그 길에 세 여신의 등불 세 개가 빛을 발하다 사라지고, 이내 다시 나타나는 걸 반복한다. 의심과 믿음이 뒤섞여 번뇌하는 인간의 머릿속을 잘 표현하는 모습이라 인상적으로 남았다.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보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세 여신은 두 가능성으로 그의 마음을 후벼팠다. 보내자니 지하의 왕으로써의 위엄이, 보내지 않자니 냉혈한. 그리고 에우디리케가 지하 세계로 가는 기차 앞에서 고민할 때도 세 여신이 등장하여 등을 떠밀어주거나 혹은 발목을 잡아준다. 실을 잣는 대신 뮤지컬과 어울리게 악기로 인간의 수명을 잣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세 여신님은 공연마다 계속 똑같이 나오시니 행복... 넘나 행복... 세 분의 케미는 집으로 모셔오고 싶을 정도로 좋다. 제 인생도 뒤흔들어주세요 모이라이!


  2-3. 오르페우스

  <하데스 타운>을 보러 간 게 오르페우슈 때문인데 오늘자 시우민 이야기를 빠뜨리면 아쉽잖아요? 두 번째 관극이지만, 종이 돌돌 말아 찢어 꽃을 만드는 것도 꽤 능숙해진 우리 오르페우스. 에우디리케에게 꽃을 내밀며 청혼할 때 꽃 끝이 달달 떨리는데 처음엔 긴장해서 그런가 귀엽다 귀엽다 연발했었는데, 오늘 보니까 온 힘을 다해 꽃을 쥐고 내미느라 떨리는 것 같았다. 손목에서 팔꿈치 방향으로 뻗은 부분에 바짝 선 자잘한 근육이 뭐 그렇게... 예뻐... 내 근육은 살에 파묻혀 있는데.... 다른 배우님들이 오르페우스 부둥부둥 예뻐하는 게 눈에 보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헤르메스가 오르페우스를 소개할 때도 내 친구의 아들이라 하고 자기 날개 밑에 두기로 했다 말하고(저는 친구 아들이 그렇게 사랑스럽던데요) 페르세포네도 하데스에게 그냥 사랑에 빠진 애들이니 보내주자, 에우디리케는 꼬질꼬질 코피 터진 오르페우스 얼굴도 닦아주고...(구구절절) 아무튼 제 최애가 무대에서 다른 사람에게 예쁨 받고 있는 걸 보면 좋을 수밖에 없어요. 기타 치는 오르페우스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고 노래하는 시우민이 무대에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아주 먼 옛날 팬 직캠 중에 '나 노래할 거야~'하고 인사해주던 걸 보고 눈물 찔끔 흘렀다 이거예요... 우리 애는 뭐든 열심히 해서 그 결과를 팬들에게 선물로 주거든요ㅠㅠ>이게 제가 시우민을 덕질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저는 노력하는 사람이 좋아요. 타고난 것에 기대기보다는 해나가는 모습이 매력적이니까요!) 아직 좀 더 가다듬어야 하는 부분이 들리기도 했고, 1막에는 긴장을 하는지 불안한 부분도 있었다. 근데 확실히 1막>2막으로 갈수록 연기와 노래가 여유로워지고 더 잘하는 게 보인다. 수요일에 보러 갈 땐 더 잘하겠지! 시우민, 오르페우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Wait for me>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해서 또 언급은 안 하겠지만 진짜진짜진짜진짜 좋다. 그리고 춤을 추던 아이돌이라 그런지 회전무대에서 능숙하게 몸을 쓰는 걸 보니 주먹을 입에 물고 오열할 것 같았다.(마스크야 고마워!)


  2-4. 기립박수는 타이밍은 언제인가요?

  분명 <귀환>에서는 커튼콜 할 때 다 같이 일어서서 박수치고 환호도 했던 거 같은데, 왜 <하데스 타운>에서는 사람들이 앉아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걸까? 뮤알못의 궁금증은 자첫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주섬주섬 일어날 준비를 했는데 아무도 안 일어나잖아요? 송스루 뮤지컬은 커튼콜 때 안 일어나나? 하며 집에 와서 후기를 찾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기립박수를 언급하며 실패했다, 다음에는 성공하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야 두 번째 공연을 보는 나는 오늘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발 끝에 힘을 주었다. 스프링처럼 툭 튀어 올라 설 준비를 했습니다! 헤르메스 강홍석 님이 커튼콜 때 쌍따봉을 촥 날려주셨는데 사람들이 그걸 신호로 벌떡 일어서 박수를 쳤다. 알고 보니 분위기 좋아서 날려주신 쌍따봉이었는데ㅋㅋㅋ 사람들이 일어서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서자 다른 배우들도 하하호호 웃으셨다. 헤르메스님 입으로 땡큐~ 해주셨는데 저도 땡큐예요 배우님! 커튼콜을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때문에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브로드웨이 공연 후기를 보니 사람들이 무대 위 배우들에게 호응하며 티키타카 한다는데 공연장 내 환호가 금지되어 있어 할 수 있는 건 손바닥 부딪히기밖에 없다 이거예요. 시우민 퇴장할 때 손 흔들면서 안녕~ 해주는데 박수치다 말고 나도 안녕~ 손 흔들었다. 오늘 공연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다 좋았다.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고, 무엇 하나 잊어버리지 않고 기록하려고 기억하려 애썼다. 밴드팀 마지막까지 박수 야무지게 치고 공연장을 나왔다.(원래 콘서트 끝나고 나면 조명 다 꺼지고 스텝들이 나가세요~ 나가세요~ 할 때까지 남아서 인증샷 찍고 덕친들 만나 잘 가요 인사하던 습관 때문에 그냥 나갈 수가 없어요. 특히.... 팬들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서 인사 또 하던 멤버도 있었었다고요! 공연장은 함부로 나가는 게 아닙니다...)



  3. 입구와 출구는 하나의 문이다, 나가는 순간 다시 들어오게 되는.


  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에도, 공연을 보고 난 후에도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설렘, 방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걸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최애와 함께 한 공간에 있었다는 벅참. 다른 게 있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만날 수 있다는 확신(=입금된 표)이 있다는 거. 콘서트는 끝나고 나면 내년일까 내후년일까 공지 뜰 때까지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이 보장된 <하데스 타운>에서는 그런 기다림이 없다. <하데스 타운>의 결말은 끝이자 다시 시작이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최대한 뒤로 미루고자 한다.) End가 아니라 And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 그래서인지 다음 공연을 보러 가도 원래 내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하데스 타운>을 즐길 수 있다. 연휴 동안 알차게 할 일 잘 마무리하고 수요일에 또 시우민 보러 가야지! 오르페우스의 베푸는 재능이 나의 2021년 하반기를 꽉 채워주는구나! 이렇게 또 나날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4. 오늘의 캐스팅


  - 오르페우스 : 시우민

  - 헤르메스 : 강홍석

  - 페르세포네 : 박혜나

  - 에우리디케 : 김환희

  - 하데스 : 양준모




  

매거진의 이전글 뮤지컬 HADES TOWN 하데스 타운 202109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