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헐뜯기는 잠시 내려놓기
일 년간 준비했던 시험에서 떨어졌다. 벌써 3년째다.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게는 무슨 면목으로 말하지? 이번에는 꼭 붙을 거라 예상했었는데, 20대 후반까지도 내 인생은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걸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뒤처지고 있다. 진짜 이번 생은 진짜 글러 먹은 건가? 죽는 게 더 편할 거 같다. (20대 한때 내 머릿속)
많은 시험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삶에 있어서 크고 작은 시험은 유치원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험을 거치며 우리는 자신의 능력 전반에 대한 믿음(belief)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숫자를 가지고 하는 일은 잘하는 편이야, 하지만 글 쓰는 건 정말 별로야(못해). 와 같은 형태의 자기 능력에 대한 평가치를 가지게 된다.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은 균형 잡혀 있어야 심리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꽤나 객관적이고 세부적이라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버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서 본 예처럼 '나는 숫자를 가지고 하는 일은 잘하는 편이야, 하지만 글 쓰는 건 정말 별로야(못해).'라는 말은 나에 대한 평가치곤 꽤나 자세한 편이다. 자신의 능력치를 뭉뚱그려 평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심리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극단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예: 자기애성 성격), 특히 부정적인 쪽으로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는 각종 정신병리의 취약성을 높인다.
그렇다면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일반적으로 자신을 더 채찍질하는 것을 선택한다. 즉, 자신의 몰아세우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도록 압박하는 행동을 한다. 빡빡했던 일정을 더욱 빡빡하게 채우고, 자신의 잘못을 분석해 나무라고 비난한다. 성공을 위한 이런 행동은 일부 적절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실패를 통한 자기반성과 계획 수정은 다음 과업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앞서 언급한 저런 방식을 몇 번씩 반복하더라도 성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더욱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면 자기반성의 방법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법 대신 자신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해주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실패한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위로나 격려는 사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한 자기비판과 반성적 태도는 불안과 우울에게 좋은 영양분이 된다. 특히, 남에게도 하지 않는 말들을 자신에게 내뱉고(예: 이 **(욕설)아, 이런 것도 하나 못하냐, 으이구! 나가 죽어라! 등),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예: 자기 전 혹은 멍 때릴 때)이다.
불안과 우울로 마음이 물들기 시작하면, 자신이 계획한 행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시험 전날 내게 정말 중요한 사람(예: 가족, 친구, 연인 등)과 심하게 싸운 경우를 생각해보자. 다음날 시험이란 걸 알지만, 공부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요약하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비난으로 머릿속이 채워져 있다면, 다음 시험에서도 낙방할 가능성이 크며, 오히려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해 마음의 상태를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성공 경험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좋은 스펙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자신의 하루 스케줄을 10분 단위로 쪼개서 계획하는 내담자를 보았다. 그 학생과 이야기하며 느낀 것은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쫓기고 있다는 분주함, 불안함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데 대한 지침/무기력이었다. 이런 노력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더욱 자신을 옭아매는 행동을 했던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나를 찾았다.
우리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일부 그만둬야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