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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그녀

달라진 수면 시간

by 마음슥슥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러워진다. 눈 맞춤이 되고, 자기 이름이 나오면 맞춰 뒤 돌아보는 등 제법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 더 큰 이유는 이제 가벼운 상호작용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등에 턱을 대고 문지르면 까르르 웃고,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내가 쳐다보면 마치 ‘거기 아무것도 없는데 속았지롱!’ 하는 것처럼 배시시 웃어 보인다. 말 못 하는 그녀와 조금씩 뜻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뻐 어쩔 줄을 모르겠는 요즘이다.


그녀는 어흥이를 좋아한다. 옆지기는 이 사진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매일매일 그녀에겐 변화가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부모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변화가 고정돼 버린다면 우리 부부에게 미칠 영향은 상당할 것 같다. 그건 바로 수면 시간의 변화이다.


삼 일 전 그녀는 잠들기 전에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울며 잠 이루지 못했다. 보통은 침대에 눕히면 혼자 침대를 헤엄치다 조용히 잠드는 그녀였기에 처음엔 아픈 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어제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입면 시간이 1시간가량 늦어졌으나, 이번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칭얼거렸다. 옆지기와 나의 걱정은 커졌다.


배 보이며 편하게 자렴 지아야. 조금 일찍 잠들어서 우리에게 육퇴를 선물해다오


지아가 늦게 잠든다는 것은 나와 옆지기 자유시간의 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갑작스런 수면 습관의 변화는 낯설었기에 자체만으로 당황스러웠고, 혹 그녀가 아픈 건 아닌지 의심하게 했다.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변화였다.


지아 생일을 맞아 후배가 보내준 부엌 놀이 세트를 옆지기와 2시간여 조립하며,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다.

‘저녁에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던데, 이제 시작인가?’

‘조금 힘든 날이 연속된 거겠지.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말자.’

옆지기와 많은 데이트를 했지만 부엌놀이세트 조립하기 데이트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좋았다. 옆지기는 날 보충시켜주는 존재다


생각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내 이쁜 그녀이지 않은가? 언제까지 내 기준에 그녀가 맞출 수는 없다.’


나는 갓 돌을 넘긴 그녀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길 바랐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바람인가? 잠자는 시간을 결정하는 건 그녀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요청할 순 있지만 결정은 그녀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 욕심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을 조종하려는 부모를 만나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여럿 만나오며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겠노라고. 하지만 그 다짐은… 부끄럽게도 벌써 조각나고 말았다.


자각하고 나니 마음이 꽤나 편해졌다. 바뀐 그녀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도 치료해 줘. 어딘진 모르지만 다 말이야


조건부 사랑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일찍 자고, 잘 먹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할아버지와 그녀. 나의 아빠와 나의 자녀. 두 사람을 지켜보며 나는 아버지로 하루 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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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