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우유 vs 다른 우유
오늘은 TV를 친구 삼아 소파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보냈다. 당연히 끼니라고 부를만한 거창한(?) 것은 먹지 않고 주섬주섬 하루 종일 배를 채웠다.
서울로 막상 올라올 기차 시간을 앞두니 배가 고팠다. 역 앞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흰 우유를 샀는데, 흰 우유를 사기까지 마음 안에 약간 갈등이 있었다.
‘나는 흰 우유를 좋아한다. 근데 왜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은 지금 다른 우유를 먹을까 망설이고 있을까?‘
‘흰 우유를 먹는 것은 뭔가 뽀대? 간지? 나지 않는 거 같다.’
‘바나나 우유 혹은 영어 이름을 지닌 다른 우유를 골라야 있어 보일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 있어빌리티라는 용어를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타인에게 ‘있어 보여야 한다 ‘는 측면을 강조한 말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내가 뭘 먹던 신경은 전혀 안 쓸 거다. 오히려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면 내게 신경을 쓰겠지.
우유 하나 고르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이런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흰 우유를 집어 들었다.
기차를 타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꽤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
멋져 보이고 싶고, 똑똑해 보이고 싶고, 결단력 있어 보이고 싶고, 쿨 해 보이고 싶고, 세심해 보이고 싶고, 표현하기 힘든 모든 영역에서 ‘다’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세상엔 나처럼 있어 보이는데 집중하는 사람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내 이런 마음을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고, 가끔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이젠 알고 있지만, 오랜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해 하마터면 흰 우유대신 별로 안 좋아하는 색깔(?) 우유를 고를 뻔했다.
흰 우유가 색깔 우유만큼이나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