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경의 나들이 길 #01
나는 나의 몸이 고요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잠을 자듯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곧은 자세로 흰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었다. 주변에는 아내 정순과 큰 아들 대일과 막내아들 대호, 그리고 장손 다한이가 슬픈 얼굴로 빙둘러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 이제 내가 내 몸을 떠나 영원한 저세상 길로 들어서는가 보다. 호경아! 그동안 살아내느라 고생했다." "휴"하는 탄식과 함께 고요가 찾아왔다.
이제 잠시후면 나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들 중에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나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도, 그리고 나의 잘난 척을 가르침으로 알고 떠 받들던 제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내가 이제 떠나감에,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보내려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처음 떠나왔던 그곳으로 복귀한다. 복귀 전에 내가 할 일은, 귀 찮은 사람들의 방문을 맞이하는 일, 그리고 장례절차, 거기에 더해 내가 미리 장만해 둔, 육신의 묘지에 묻히는 일이다. 그 일이 끝나면 곧바로 제자 보현의 절에 가서 제례를 당하면 끝이다. 나는 자유를 찾아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나의 한 판 세상나들이는 이제 예전의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고, 나는 또 하나의 세상 속에서 추억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자길 것이다.
"할아버지가 <다한아, 난 날 추워지기 전에 가련다>하셨어, 한 달 전쯤에..." 나의 말에 아버지가 놀라시며 다시 묻는다. "무슨 말이지? 한 달 전 이라니?" "아, 지난달에 할아버지 편찮셔서 대전 집에 들렀잖아요. 그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랬구나, 할아버지는 가실 날을 미리 아셨나 보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시고 떠나셨으면 좋으셨을 텐데"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다 보실 거다, 저 다른 세상에서..."
"기회가 되면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글로 한번 써보고 싶어요. 수필, 소설, 기행문 형식을 병합해서 2권짜리 페어북으로 만들고 싶어. 내가 그만한 글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시도는 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