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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Aug 13. 2020

소양강댐 인공폭포


 6월 24일부터 시작되었다는 올해 장마는 지금도 매일 기록을 경신하며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많은 건물과 도로가 유실되고, 엄청난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그 피해를 헤아릴 수도 없는데, 앞으로도 몇 주나 지속될지 모른다 하니, 전 국민의 걱정이 심각하다

 하여 소양강댐도 3년만에 방류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미 벌어지는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내가 부치는 작은 밭도 비가 올 때마다 흙이 파내려 가고, 고추도 참깨도 쓰러지고 병이 번져 엉망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예전부터 보고 싶어 벼르던 소양강댐의 방류를 이번에도 놓칠 수는 없어, 아내와 함께 춘천으로 달려갔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니, 제법 규모가 크고 화려한 닭갈비집 막국수집들이 길가에 즐비하고, 그 음식거리 너머, 저 멀리서 잿빛 뭉게구름이 어지럽다. 그리고 그 구름 뒤에 거대한 댐이 성벽처럼 솟구쳐 굼실거리는 강줄기를 막아 섰다. 소양강댐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려보니,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수백 미터 떨어진 소양강댐에서 방류된 물줄기가 폭포수로 부서져 안개비로 흩날리는 것이 아닌가 

 몰려드는 차들로 댐으로 오르는 2차선 오르막길이 점점 막힌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가니, 왼쪽 산을 깎아 정상으로 향하는 구부렁 길은 위태로운 절개지로 갑갑하고, 댐이 보이는 오른쪽은 잡목으로 덮이고 철망으로 막혀서 한참을 가야 중간중간 겨우 시야가 트인다. 그리고 그런 곳엔 여지없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겠다고 갓길 불법주차가 만연하고, 하여 길은 막히고, 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어수선하고, 좁은 철망 틈으로 얼굴을 들이박은 사람들로 난리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경쟁적으로 투자를 쏟아 붓는데, 댐으로 오르는 중간중간 시야 터진 곳에 전망대 한두 개 세워 주면 얼마나 좋을까

 댐 정상을 지나 선착장을 지나 맨 안쪽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도 사람도 한산하다. 차에서 내려 우산을 챙겨 들고, 걸어서 댐 쪽으로 향해 가는데, 수면은 완전히 만수위로 가득 차서, 발목이며 어깨며 치맛자락을 물에 적시고 서 있는 나무들이 싱싱하다.

 소양강댐은 높이 123미터, 길이 530미터, 저수량 29억톤의 진흙과 돌로 다져진 사력다목적댐으로 제한수위가 190.3미터인데, 이번 장마로 그 제한수위를 1미터 이상 넘어서서 어쩔 수 없이 방류를 시작했다고 한다. 댐의 높이가 워낙 높아서 수문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물 바닥에 직접 떨어지지 않도록, 물의 중력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중간에 턱을 두었다. 그래서 수문에서 흘러나온 물이 이 중간 턱에 부딪쳐 거대한 뭉텅이뭉텅이 물기둥이 되어 다시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사막의 모래폭풍이 한꺼번에 덮치는 듯, 태평양을 모조리 이끌고 온 쓰나미가 해안을 집어삼키는 듯, 천둥소리 지진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아도 그 소리와 크기에 가슴이 서늘하다. 허공을 뒤덮었던 그 엄청난 물기둥들이 다시 강물 위로 떨어지며 부딪치고 부서져, 구름으로 날아오르고, 안개비로 흩어져 사방 수백 미터를 비안개로 적시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뭐라고 표현했을까? 천지 사방에서 몰려든 수백 마리 청룡 백룡이 群雄割據(군웅할거)하며 무리 지어 싸운다고 했을까? 당나라 시인 이백은 215미터의 여산 폭포를 보고 ‘멀리서 보니 긴 강이 걸려있는 듯하고, 날아 흘러내리며 삼천 척을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고 시를 썼다. 

 수문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물줄기가 물기둥이 되고, 물 폭풍이 되고, 다시 물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물안개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부서져야 비상하고 가벼워야 날아 오른다. 현실에 안주 하지 말고, 욕심 채우기만 하지 말고, 부서짐을 겁내지 말고. 비워 내고 비워 내어 몸도 영혼도 좀 더 가벼워져야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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