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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Oct 20. 2020

구름 위의 산책(2)

부석사(4 ~ 6)

4. 쌍탑    

 

 우람하고 건장한 사천왕상 지나면 깨끗하고 단아한 쌍탑이 방문객을 맞는다. 탑이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정갈한 이 쌍탑은 분명 어디에서 옮겨온 것이리라. 길 양 옆에 쌍탑이 서고 쌍탑 양 옆으로 건물이 서고 쌍탑과 건물 사이 마당은 사계절 내내 피고 지는 이름 모를 야생화 가득한 꽃밭이고, 올려다보는 부석사는 가파른 비탈에 석축를 쌓아 한층한층 대칭을 이루며 지어올린 상승구조다. 그리고 그 정점 끝에 무량수전이 보인다.     


5. 범종루   

 

 육중한 나무 기둥을 바둑판처럼 짜 맞추어 허공에 둥실 띄운 범종루는 측면이 남쪽을 향하게 세로로 세워 놓았고, 앞은 팔작지붕인데 반해 후면은 맞배지붕으로 짜여 있다. 따라서 앞에서 올려다보면 팔작지붕이 허공에 날아오를 듯 시원하고, 뒤에서 내려다보면 간결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따라서 우러러보는 중생의 눈으로 올려다볼 때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돋보이고, 무량수전에서 부처의 눈으로 내려다 볼 때는 단정함과 겸손함이 강조된다. 변화의 미학이자 공간 배치의 절정이다. 저녁예불 시간 젊은 스님이 서늘한 장삼자락 휘날리며 법고를 둥둥 울리면, 부석사 전체가 어둠의 대양 위를 두둥 떠가는 함선처럼 일렁거린다.    


6. 안양루    


 범종루 마루 밑을 숙연히 지나 고개를 들면 바야흐로 안양루가 솟아 있다. 부처의 극락 세계 안양루, 까마득한 석축 위에 세운 팔작지붕. 난간에 써 붙인 현판 글씨 ‘안양문(安養門)’이 지극히 모범적인 모습인데 반해, 화려한 다포를 배경으로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 글씨는 그야말로 날아갈 듯하다. 마치 구름 한 조각을 걸어놓은 듯 둥실거리는 ‘부(浮)’자. 두 눈이 어지럽도록 화려한 서까래와 들보. 삼천육백 뼈마디와 삼만육천 깃털들이 나부끼는 봉황의 날개짓 같다. 불(佛)세계를 비상(飛上)하는 대붕의 날개짓. 인간이 형상화한 천상의 세계다.

 불교 화엄(華嚴) 세계의 장엄함을 소백산맥의 무수한 능선으로 둘러놓은 절 부석사, 빛날 화(華)자를 본떠 조성된 가람 배치와 하늘과 구름과 능선을 정원으로 펼친 동양화 한폭. 안양루에 오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바세계가 얼마나 장엄하고 장쾌한 아름다움인가를 절감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사바가 곧 극락임을, 오직 바라보는 자의 눈과 마음이 사바와 극락을 가름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절.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김삿갓의 탄식어린 시구가 전각들을 내려다보고, 범종루 응향각 취현암의 유연한 지붕들은 이슬비에 젖는 연잎 같다. 그야말로 지붕들의 차례탑, 아름다움의 잔칫상이다. 산의 극치가 능선에 있다면 건축의 극치는 지붕 처마선에 있다. 처마는 천상을 향한 지상의 그리움이다. 구름을 향해 뻗은 인간의 절절한 손길이다. 결코 접을 수 없는 필생의 꿈이다. 단 하나의 사랑이다.

 그래서 지붕들을 한참 바라다보면 여인의 치맛자락이 떠오른다. 수수하고 엄숙한 맞배지붕 치마를 입은 여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팔작지붕 치마를 입은 여인. 내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는 분명 맞배지붕의 외면에 팔작지붕의 내면을 지닌 여인이리라. 겉모습은 단아하나 내면은 너무도 우아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범종루 같은 사람, 아! 무량수전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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