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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Oct 21. 2020

구름 위의 산책   (3)

부석사(7 ~ 9)

7. 마당 


 지금처럼 TV나 컴퓨터가 없는 시대에 사람이 집 안에서 가장 많이 바라보는 곳이 어디일까? 그곳은 의외로 마당이다. 방문을 열고 또는 대청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던 곳이 다. 따라서 마당은 정원이자 놀이공간이고, 야적장이자 농사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수행하던 공간이었다. 한옥에서 마당의 배치는 매우 중요하다. 부석사의 마당은 결코 넓지 않다.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산지사찰이라 넓은 공간을 할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량수전에 비하여 안양루를 작게 세워 부석사가 자랑하는 소백산맥 전체가 정원인 광활한 풍경을 전혀 해치지 않았으며, 별다른 정원수 하나 없이 편안한 가운데 조용하고 정중하게 방문객을 맞아주는 석등 하나가 전부이다.

 섬세하고 생기 있는 화사석의 조각상과 날렵하고 매끈한 간주석 그리고 연잎으로 치장한 팔각 하대석과 만개한 연꽃 한송이 간결하게 새겨진 배례석에 이르기까지 정교하면서도 단아하고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고택을 지키는 종손의 젊은 며느리처럼 담박하면서도 기교 있고 세련되면서도 친근하다.   

 

8. 무량수전    


 하늘 아래 최고의 정원을 눈 아래 펼쳐놓고 장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서 있는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불 즉 극락세계를 주재하시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 고래(古來)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무량수전을 극찬하여 왔던가! 유려하고 우아한 팔작지붕. 안양루 앞에 서서 무량수전을 바라다보면 한순간에 나도 정지된 건축물이 된다. 발길도 숨길도 모두 멎어버릴 수밖에 없는 감동의 카타르시스. 숨을 죽인다는 것, 숨 죽여 바라본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순수하고 깨끗한 벽면, 기둥과 문짝의 조화를 통해 이룩한 상쾌한 균형과 절제. 배흘림 위에 올라앉은 주심포는 단청 없는 색감과 화장 없는 나무들로 조형되어 긴 꽃묶음을 세운 듯, 파르테논 신전의 돌기둥을 옮겨 놓은 듯. 퇴색한 바탕에 사각으로 새겨 넣은 ‘無量壽殿’(무량수전) 현판 글씨는 공민왕의 자애로운 미소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성화처럼 피어나는 공포 위에 올라앉은 힘차고도 우아한 지붕선.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경사면과 직선으로 이어가다 살며시 양끝을 들어 올린 처마선. 장중하나 우아하고, 산뜻하면서도 품격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처마선의 아름다움. 지극히 안정적이면서도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지붕.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축물. 누구나 극찬하는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아름다운 건축물. 아무리 바라보아도 아쉽기만 하고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지는 눈물겨운 내 사랑처럼, 내 눈을 부수고 가슴 한가운데 찍힌 불멸의 화인(火印).    


9. 아미타여래좌상    


  이 시원한 전각의 문을 열면 동쪽을 향하여 무량수부처님이 앉아계시다. 아미타 부처님이 서방정토를 주재하시는 부처님이기 때문에 서방을 의미하는 서쪽에 모셔 동쪽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배치한 것이 아닐까? 천년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건장한 어깨에서 발원한 자비로움이 전신으로 흘러내리는 고려시대 소조불의 전형적인 자태이다. 그 앞에서 절로 허리가 굽혀지는 것은 불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이 이분을 구심점으로 모아져 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움의 창조주. 아름다움의 구심점. 세상에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장인들의 솜씨가 가장 현란하게 펼쳐진 광배. 기둥, 들보, 서까래들의 기묘한 조화. 이 모든 예술미의 구심점, 무량수불. 인간의 목표는 단지 이것이어야 하리라. 아름다움이 구심점인 삶.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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