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산책(4)

부석사(10)

by 노진욱

10. 선묘낭자


무량수전의 서쪽에는 부석(뜬돌)이 있고 동쪽에는 선묘각이 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를 유학할 때, 대사를 사모하여 용으로 변하여 대사가 탄 배를 신라까지 안전하게 이끌었으며, 또 대사가 지금 부석사 자리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사교를 믿는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돌로 변신하여 공중을 빙빙 돌며 위협하여 마침내 그들을 몰아낸 후, 무량수전 서쪽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는 바위가 부석(뜬돌)이고, 이 선묘낭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작은 전각이 선묘각이다.

따라서 선묘각에는 마치 춘향이처럼 곱고 아리따운 선묘아가씨의 초상화가 하나 걸려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의상을 위해 낯선 땅 신라까지 건너와 바위로 굳는 선묘낭자. 가장 신성한 종교에 깃든 가장 아름답고도 숭고한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종교이고 종교가 사랑임을, 사랑과 종교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하나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선묘낭자와 의상의 사랑. 세상의 모든 문학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아마 사랑이리라. 가장 쉬우면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 가장 미묘한 것이, 위대한 것이 바로 이 사랑 아닐까


(1) 무지개 되어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동공 하늘가에

용울음 받쳐이고 쌍무지개 떴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빛 됨 위해

살아온 나의 날들

순간, 나는 사람들의 눈 속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그 무지개의 꿈

무지개빛 꿈으로 나는 물들어 갔다


(2) 노을이 되어


숨겨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핏빛 가슴뿐

채색의 아름다움에 숨 막혀 죽어가는

산과 들과 대지 위에

그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나는 구름바다와 산들

하나의 얼굴을 품어안음으로

탈색하는

탈변하는 이 조화와

내가 내 스스로에 숨죽이는

눈부신 아름다움이여!


예언처럼 태양을

품어 선홍빛으로 불붙은 나


(3) 용(龍)이 되어


내 육신 바다에 수장하고

죄 하얗게 씻어

본능마저 헹궈낸 후엔

본성마저 가셔낸 후엔

온몸 반짝이는 비늘을 달고 용이 되어

다가갈 수 있을까

억만 겁(劫) 가로막힌 인연을 열고

시퍼런 불법의 계율을 건너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대 품속에 귀의할 수 있을까

파도치는 거친 세상

비바람 폭설에도 불기둥 뿜어내며

해탈의 길 열어줄 수 있을까

성불의 업(業) 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움의 여의주 뼛속 깊이 숨겨두고

사무치는 그대, 도솔천에 이를 때까지


(4) 뜬돌(浮石)이 되어


언제쯤 그대 앞에 부석으로 다가갈까

질서의 화엄 세계 지켜가면서

천년 세월

당당한 지주(支柱)로 다가설 수 있을까


천왕문 앞에서 욕정 죽이고

온 몸 바쳐

그대 석축 되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이 세상

천지를 품어 안을 수 있을까


그대는 사랑마저 헛꿈이 되는

엄숙하고 단아한 무량수의 세계


석등도 석탑도 없이

조그만 선묘각으로 물러나

그대 내륙 깊숙이

골담초 선비화로 자랄 수 있다면

아! 천번을 깨어져도

다시 짓는 사랑

나, 뜬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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