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10)
10. 선묘낭자
무량수전의 서쪽에는 부석(뜬돌)이 있고 동쪽에는 선묘각이 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를 유학할 때, 대사를 사모하여 용으로 변하여 대사가 탄 배를 신라까지 안전하게 이끌었으며, 또 대사가 지금 부석사 자리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사교를 믿는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돌로 변신하여 공중을 빙빙 돌며 위협하여 마침내 그들을 몰아낸 후, 무량수전 서쪽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는 바위가 부석(뜬돌)이고, 이 선묘낭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작은 전각이 선묘각이다.
따라서 선묘각에는 마치 춘향이처럼 곱고 아리따운 선묘아가씨의 초상화가 하나 걸려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의상을 위해 낯선 땅 신라까지 건너와 바위로 굳는 선묘낭자. 가장 신성한 종교에 깃든 가장 아름답고도 숭고한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종교이고 종교가 사랑임을, 사랑과 종교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하나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선묘낭자와 의상의 사랑. 세상의 모든 문학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아마 사랑이리라. 가장 쉬우면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 가장 미묘한 것이, 위대한 것이 바로 이 사랑 아닐까
(1) 무지개 되어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동공 하늘가에
용울음 받쳐이고 쌍무지개 떴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빛 됨 위해
살아온 나의 날들
순간, 나는 사람들의 눈 속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그 무지개의 꿈
무지개빛 꿈으로 나는 물들어 갔다
(2) 노을이 되어
숨겨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핏빛 가슴뿐
채색의 아름다움에 숨 막혀 죽어가는
산과 들과 대지 위에
그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나는 구름바다와 산들
하나의 얼굴을 품어안음으로
탈색하는
탈변하는 이 조화와
내가 내 스스로에 숨죽이는
눈부신 아름다움이여!
예언처럼 태양을
품어 선홍빛으로 불붙은 나
(3) 용(龍)이 되어
내 육신 바다에 수장하고
죄 하얗게 씻어
본능마저 헹궈낸 후엔
본성마저 가셔낸 후엔
온몸 반짝이는 비늘을 달고 용이 되어
다가갈 수 있을까
억만 겁(劫) 가로막힌 인연을 열고
시퍼런 불법의 계율을 건너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대 품속에 귀의할 수 있을까
파도치는 거친 세상
비바람 폭설에도 불기둥 뿜어내며
해탈의 길 열어줄 수 있을까
성불의 업(業) 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움의 여의주 뼛속 깊이 숨겨두고
사무치는 그대, 도솔천에 이를 때까지
(4) 뜬돌(浮石)이 되어
언제쯤 그대 앞에 부석으로 다가갈까
질서의 화엄 세계 지켜가면서
천년 세월
당당한 지주(支柱)로 다가설 수 있을까
천왕문 앞에서 욕정 죽이고
온 몸 바쳐
그대 석축 되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이 세상
천지를 품어 안을 수 있을까
그대는 사랑마저 헛꿈이 되는
엄숙하고 단아한 무량수의 세계
석등도 석탑도 없이
조그만 선묘각으로 물러나
그대 내륙 깊숙이
골담초 선비화로 자랄 수 있다면
아! 천번을 깨어져도
다시 짓는 사랑
나, 뜬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