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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Nov 20. 2020

좋은 교사 좋은 학생


  지금까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교사와 학생의 정의는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자이다. 요즘 들어, 창의성 교육, 배움 중심 수업이 보급되면서 이 이분화 된 정의가 조금은 흐트러지고 있지만, 수능으로 줄 세우기 하는 한 학교에서는 지식 전달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대학만을 목표로 매진하지 아니할 수 없다. 입시가 끝나면 학교건 학원이건 가장 먼저 걸어 놓는 것이 합격자 현수막이고, 교장부터 평교사, 동문들에 이르기까지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자랑하고 다닌다. 오직 명문대 합격생들만 존재할 뿐, 실패한 학생들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다. 

 소위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자기 학생이라는 대의는 망각하고, 어떤 국민을 만들어야 한다는 ‘홍익인간’의 기본 목표는 상실하고, 명문대에 자기 학생들만 넣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자기 지역만, 자기 학교만, 자기 학생만 잘 되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주의 혹은 자기주의가 우리 교육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이런 소인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당연히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교육은 학생을 이용하여 학교와 교사들이 자기 자랑거리, 자기 업적 쌓기에 혈안이 된 입시 실적 교육이다. 

 쇠귀 신영복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낮추어야 배움의 자세가 생기는 것이다.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를 우습게 보면 배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이 향상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착하고 겸손한 학생들이다. 입학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거만하고 교사를 우습게 보는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를 나는 무수히 보아왔다. 따라서 교사는 신학기가 되어 학생들을 마주하면 첫째 학생들에게 자기를 낮추는 법, 겸손한 마음을 갖추는 자세를 강조해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다. 교사의 지식은 학생들이 목숨처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보다 정확하지도 못하고 풍부하지도 못하고 빠르지도 않다. 학교 교육의 목적이 단지 지식의 축적이며 대학입시라면 명문대에 입학한 일부 학생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패배자고, 모든 교사들은 실패자이다. 왜냐하면 가르친 아이들을 모두 명문대에 진학시킨 교사가 몇이나 있겠는가?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고,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고, 자신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배움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교직에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선생님을 꿈꾼다. 돈을 벌기 위해 교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길을 잘못 선택한 사람이다. 교사가 되기도 힘들거니와 사회적인 대우나 경제적인 대가가 노력에 비해 다른 직종보다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사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교직을 선택한다. 그러면 정말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언젠가 병원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 간에 오고 간 대화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의사란 무엇입니까?”

“ 좋은 의사?”

“ 어떤 것이 좋은 의사일까 고민하는 모든 의사.”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리더가 열심히 하면 세상은 흥하고 멍청한 리더가 열심히 하면 세상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교사의 잘못된 교육 철학은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학생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학생과 국민과 나라를 다 망쳐놓고 열심히 살았다고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스스로를 뿌듯해한다.

 열심히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듯, 열심히 가르친다고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가르쳐야 모든 국민들에게 아니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좋은 교사란 ‘어떤 것이 좋은 교사일까?’ 고민하는 교사이다. 

 좋은 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학생이 좋은 학생일까?’를 고민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다. 공부하는 것이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가족 위에 군림하며 짜증내고 투정부리는 모습, 그리고 쩔쩔매는 부모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꼴불견 중 하나이다. 가정과 사회와 학교에서 어떻게 해야 바람직할까를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학생이야말로 좋은 학생인 것이다. 

 학교는 단지 지식을 배우고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모든 구성원이 꿈을 기르고 희망을 가꾸어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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