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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Nov 09. 2020

매향으로 장엄한 극락세계(5)

선암사(13~14)

13. 뒤깐    


 선암사의 볼거리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절정은 역시 선암사의 해우소 ‘뒤깐’이다. 정(丁)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옆에서 보면 팔(八)자 모양이다. 2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바닥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 북쪽 통로를 들어가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가 사용하는데. 벽은 트여 있고 듬성한 발을 드리워 직설적인 쑥스러움을 피하고 있다. 각 칸은 2열로 배열되어 있고 각 배열은 4칸으로 이어져 있다. 사면에 수직의 창살을 세워 통풍이 시원하고 햇살도 은은히 들어와 마치 6월 대숲 속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선암사에 오면 반드시 이 해우소에 들어와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억지로 참았다가라도 이 해우소에서 쌓인 근심을 해소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선암사를 제대로 보고 느꼈다 할 것이다. 둥실 뜬 엉덩이 밑으로 불어오는 푸른 대바람. 창살을 통해 스며드는 은은한 매화향, 그리고 한가롭게 바라보이나니, 나풀거리는 매화 꽃송이 너머로 절을 향해 올라오는 상춘객들의 상기된 발걸음. 연녹색으로 물드는 앞산과 옆산. 편안함과 한가로움. 빠져나간 근심 자리에 차오르는 시원함, 상쾌함. 아! 먹음을 능가하는 배설의 즐거움이여!    


14. 또 다시 그리움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눈을 채우고, 야생차와 석정의 물로 입을 채우고, 매화 향기와 바람으로 코를 채우고, 새소리 바람소리로 귀를 채우고, 그렇게 가득 채운 것들을 뒤깐에 들러 다시 비워내게 하는 절 선암사.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임을 말해주는 절 선암사. 온몸 가득 밴 매화향을 한잎 두잎 떨어내며 산문을 벗나나는 나의 가슴 속에서 또 다시 저릿하고 아릿하게... 매향의 그리움이 싹트고 있다.    


부서지는 강선교 물소리                    

강선루를 지우는 저녁 산안개

절 안 가득 농익은 달빛

녹차 밭을 돌보는 청바람 소리    

계절이 낡아갈수록

그리움의 실핏줄은 꽃눈처럼 부풀어

연이은 불면의 밤

절제를 깨뜨리는 몸

내 빈 몸뚱이가 너를 안고

구르다 뒹굴다

솟구쳐 일어서는 그 절정에서    

차마, 숨어들어 껴안는다

매화야 오, 매화야    

단아하고 청초하여라

알싸하고 달콤하여라

향기의 속옷 자락

해무처럼 깔아 놓고

마지막 꽃잎 열어

흐드러진 속살 한껏 열어

천만 리 달려와 마주한 사랑

숨 막히게 짜릿하고 아찔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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