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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Jul 29. 2020

최고의 교육자, 이황과 조식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 조선을 침략할 때, 가장 경계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신,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의를 지켜나가는 꼿꼿한 선비정신과, 지극히도 고향에 애착했던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지켜내던 우리 민중들의 정신이었다. 그들은 임진왜란을 통하여 조선 민중들이 얼마나 자기 땅을 사랑하고 조선의 선비들이 얼마나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곧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유학의 정신과 사상을 조선 백성들이 지키고 실천하는 바탕에 위대한 교육자 이황과 조식이 있다.

 지금도 최고의 선비고장을 꼽으라면 당연히 안동과 함양이다. 경상 좌도에 안동이 있다면 경상 우도에는 함양이 있다. 이 두 곳은 조선시대 유학의 본향이자 위대한 유학자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 내었으며, 그 대표자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황과 조식을 들 수밖에 없다.

1501년 둘은 같은 해에 때어났는데 이황은 경상좌도 예안현 온계리, 남명 조식은 경상우도 삼가현 토동에서 테어나 영남학파의 두 거봉이 되었다. 둘은 공통점은 한결같이 벼슬이나 출세보다는 학문을 추구했고, 특히 누구보다도 선현들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데 평생 심혈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나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답사를 많이 다니는데, 가장 많이 찾는 답사지는 역시 함양과 안동이다. 함양 근처에는 조식의 유적지 뿐 아니라 김종직, 정여창, 김일손, 최치원 등등의 수많은 학자들의 숨결이 배어 있고, 해인사, 영암사지 등등의 빼어난 불고 답사지와 농월정, 거연정 등등의 기막힌 정자가 즐비하다. 그리고 안동에는 이황의 유적지 뿐 아니라, 유성룡, 김성일, 이육사, 이상룡 등등 수많은 학자와 독립운동가들의 고택과 서원이 즐비하며, 한국 불교 건축의 백미 부석사와 봉정사가 이곳이 있다.

 남명 조식의 마지막 거처인 산천재를 처음 찾았을 때만해도 남명 조식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산천재 들어가는 정원 입구에 새겨진 조식의 한시 한편을 보고 감동하여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請看千石鍾(청간천석종)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정의검과 성성자를 차고 다니며 늘 한치의 더러움도 부끄러움도 허락하지 않고 살고자 했던 처사 남명, 하늘이 울어도 감정의 흔들림 하나 없는 태산 같은 인품을 추구했던 조식, 아주 작은 손해에도 인상 쓰고 손톱만한 상처에도 난리를 피우는 나에게는 남명의 시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경의 사상을 바탕으로 정인홍, 곽재우 같은 수많은 의병장을 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성리학이 비록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성리학을 완성한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이황은 평생 학문을 추구한 사람이며 고향인 토계로 돌아가 학문에만 열중하고 싶어서 수십 번이나 벼슬을 사양한 사람이다. 이황은 학문뿐이니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몸가짐이 늘 조심스럽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어서 평생 주위 사람들이 감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것이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두 번째 부인을 조금도 타박하지 않고 따스하게 대하고 부부의 예를 다한 것은 이황이 얼마나 성현들의 가르침을 몸소 실행했던가를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 후기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가 퇴계학파로 배출되었던 것이며, 구한말 의병활동의 주축이 되었던 것이다.

 말만 내서우고 이론만 주장하는 학자와 교육자는 결코 영원히 기억될 승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교육자는 스스로가 그 학문을 익히고 배우며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실행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원히 살아있는 학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우리 사회는 말로는 모두가 대단하고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훌륭하지만 실재로 실천하는 교육자는 드물다. 우리는 남명과 퇴계를 통하여 교육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우리의 교육방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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