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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Aug 01. 2020

사흘 번 돈 16,500원

 귀농을 하고 첫 농사를 지었다. 950평. 양지바른 남향에 거름이 풍부해서 모든 곡식이 잘 되는 땅이지만, 산 밑 밭이라 고라니와 멧돼지가 제 마당 놀 듯해서 심을 수 있는 곡식이 없다고 약 10년 내 땅을 대신 부쳐온 누님과 매형이 열을 토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상추, 가지, 호박, 토마토 몇 포기, 고추 조금, 참깨 조금, 옥수수 조금 모종을 사다 심고, 그리고 약 300평에 콩 씨를 뿌렸는데, 심은 지 사흘이 안 되어 상추와 고추는 고란이가 물고 뜯고, 약 이삼 주 지나 콩이 싹을 내밀자 온 밭이 어지럽게 고라니 발자국이 낭자하고, 올라오는 콩 순은 올라오는 족족 아주 살뜰하게도 잘라 먹어 버린다.

 그리고 한 스물 댓 포기 심은 옥수수 역시 수염이 거뭇거뭇 물들고 옥수수 통이 장정 알통만큼 부풀어 모래나 글피면 한번 꺾어서 맛볼 수 있겠다 뿌듯해 한 바로 그 다음날, 밭은 온통 초토화되어 있었다. 서 있는 옥수수 대는 하나도 없고 멧돼지 발자국만 어지러웠다. 한그루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쓰러뜨린 후 파먹고, 익지 않은 통까지 밟고 물고 씹다가 팽개쳐 놓았다. 뿐만 아니라 옥수수를 파먹느라고 겨우 자란 참깨와 고추마저 짓밟고 쓰러트려서 밭 전체를 아주 엉망을 만들어 놓았다. 이럴 땐 웃음밖에 나오지 않고 마음이 멍하게 텅 비어버린다. 

 콩 잎은 올라오는 족족 고라니 밥이 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콩 심은 골을 포함하여 남은 밭 전체에 들깨를 심었다. 들깨는 특유의 냄새가 강해서 고라니도 멧돼지도 어느 산짐승도 덤벼들지 않는다고 한다. 3차에 걸친 풀과의 전쟁 끝에 제법 들깨 밭의 풍모가 난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가지가 뻗어 뚱뚱한 장독대처럼 진초록 들깻잎이 무성하다. 청순하고 싱싱한 생명력이 넘쳐 바람에 일렁거린다.

 하여 아내와 나는 그 싱싱한 생명력을 따다가 팔아 보기로 했다. 아내 말로는 20장 묶은 들깻잎 묶음 하나가 마트에서 약 천원 정도에 팔리니까 돈이 될 거라고 의욕을 북돋았다. 

 농업공판장에 명의 등록을 하고 박스로 포장해서 가져다 놓으면 매일 오후 5시에 경매를 보아 통장으로 판 금약을 입금해 준다는 것이다. 하여 박스를 사러 다니는데 온 시장 바닥을 다 헤집어도 들깨 포장 박스는 구할 수가 없다. 생산량이 많은 사과, 고추, 감자 등의 포장 박스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하필 들깨는 이 지역에서는 생산량이 적어 취급을 거의 안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에서 종이 박스 10개와 속 포장 비닐을 주문했다. 

 숨 막히는 초여름 태양을 피해 아침나절 이틀 동안 아내는 들깻잎을 따고, 나는 돌아서면 무성해지는 잡초를 제거하고, 드디어 사흘 날 아침 들깻잎 포장을 시작했다. 깻잎 열장씩 두 개를 포개어 20장을 한 묵음으로 만든 50묶음을 박스에 넣고, 박스 겉면에 생산자 이름, 전화번호, 물품과 수량을 적어 공판장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일이 쉽지가 않다. 아침부터 둘이 마주 않아서 열심히 작업하다가, 또 잘 알고 친한 예전 작장 동료가 방문하여 셋이서 아침나절 내내 달라붙어 겨우 3박스를 만들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그래도 값을 얼마나 받을까 기대와 희망에 부풀에 셋이 공판장에 내다 놓고,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제천의 맛집 용천막국수집에 가서 막국수와 수육을 아주 시원하게 시켜 먹었다.

 드디어 오후 6시가 지나자 공판장에서 전화가 왔다. 

‘’1박스에 5,500원씩 3박스 16,500원 정해졌는데 진행할까요? 오늘은 깻잎 값이 좀 낮게 나오네요.‘’

 사흘 내내 노동한 대가가 16,500원이란다. 집에서 밭까지 이틀 치 왕복 기름 값 10,000원, 집에서 공판장까지 왕복 기름 값 2,000원, 박스와 비닐 값 5,000원... 합이 17,000원. 이미 생산가가 판매가를 넘어버렸다. 아이구! 이런 주제에 막국수를..

 귀농하여 농사나 지을까 한다고 했을 때 왜 다들 쌍수를 들고 반대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왜 매형이 ‘연금이나 잘 지키면서 노는 것이 돈 버는 거야’ 했는지. '요즘 농촌은 공짜로라도 좋으니, 제발 내 땅 좀 부쳐주세요!’ 애걸해도 농사지을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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