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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Feb 26. 2021

3. 문화답사의 요소 - 누구와 가느냐

3. 문화답사의 요소 - 누구와 가느냐    

 

 문화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첫째, 누구와 가느냐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어느 시간, 어느 땅인들 행복하지 않겠는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비록 뛰어나지 않은 곳을 가더라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고, 없는 감동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화답사에서 꼭 필요한 멤버는 감동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동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다. 많이 알고,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다.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답사의 동반자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며 시야와 견문을 넓힌다면, 답사 자체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배움과 감동,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이 될 것이다 

 반면, 반드시 배제해야 할 사람이 있다.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을 보여주건 시큰둥한 사람,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 짓는 사람, 서두르는 사람이다. 도착하자마자 휘휘 둘러보고는 빨리 가자고 하는 사람, 문화재를 에워싼 환경은 돌아볼 생각도 않고, 핵심 문화재 하나 재빨리 사진 찍고 볼 것 없다고 단정하며, 쇼핑과 먹거리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불국사를 답사하면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만 재빨리 찾아가 인증사진 찍고 다 봤으니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하나만 끼어도 그 답사는 망친다. 

 다수의 훌륭한 멤버들이 아무리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도 한명의 불평객이 찬물을 끼얹으면 한순간에 분위기는 깨지고 그 답사는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답사를 계획할 때는 열 명의 좋은 멤버를 찾는 것보다, 욕을 먹더라도 한명의 불평객을 배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래 전에 평택문화회 멤버들과 함께 경남 산청의 산천재(山天齋)를 답사한 적이 있다. 평택문화회는 멤버가 10명인데. 우리 문화를 찾아 공부하며 시를 창작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산천재를 답사하기 전에 나는 남명 조식에 대하여 잘 몰랐다. 전공이 국어라서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공부한 남명의 시조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에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를 기억하는 것이 전부였다. 

 차를 세우니 자그만 주차장과 붙어있는 건물은 남명기념관인데 폐교를 활용한 듯하다. 그 때만해도 지자체나 개인들이 세운 기념관들은 조잡한 것들이 많아서, 그리고 남명 조식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지식이 없어서 주차하자마자 길을 건너 산천재로 향했다. 산천재 쪽문으로 들어가는 앞뜰엔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는데, 여러 종류의 나무들, 특히 매화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가 있었다, 우산이 없어 젖을 듯 말 듯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신경 쓰며 빠른 걸음으로 산천재를 향하는데, 문득 까만 대리석의 시비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시비에 적힌 한시 한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천둥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전율하고 말았다. 그리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그들도 시를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큰 사람이 있을까?”  

  

請看千石鍾(청간천석종)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천섬 들어가는 큰 종은 지리산(두류산)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남명 조식은 지리산을 쳐서 소리를 낼 만큼 엄청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만큼 거대한 사람인 것이다. 감정이나 사심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고, 대의에 살고 대도를 추구하는 정말 크고 거대한 사람이 것이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조그만 손해도 억울해 하고 작은 고통에도 징징거리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른 사람인 것이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그러고 보니 조식의 호가 남명(南冥)이다. 남명(南冥)은 장자 소요유에 나오는 ‘남쪽의 큰 바다’다. 북명(北冥)에 곤어(鯤漁)라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길이가 몇 천리나 된다. 이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면 대붕(大鵬)이 되는데, 역시 날개가 얼마나큰지 몇 천리를 뒤덮는다는 것이다. 이 새가 한번 날갯짓을 하면 북쪽 바다에서 남쪽 큰 바다까지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가는데, 그 곳이 바로 남명(南冥)인 것이다. 조식은 바로 대붕이 내려앉는 큰 바다다. 이렇게 넓고 큰 호를 가진 사람은 오직 조식 한사람뿐일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몰랐던 무식함을 반성하며, 우리는 재빨리 발길을 돌려 남명기념관으로 향했다. 복도와 전시실에는 남명의 유품과 특히 남명의 핵심사상인 경의사상에 대한 자료들이 여러 점 있었는데 열심히 보고 있노라니, 관리인이 나와서 반갑게 맞는다.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10명이나 되는 단체 방문객이 찾아와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다고 간곡히 말하는 모습이 참 신실해 보였고, 그래서 반가웠나보다. 남명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한 후에 영상자료실로 안내하며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와 틀어주었다. 이분도 조식의 후손이라고 한다. 내가 몰랐던 위대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이 영상을 통해 숨 막히게 이어지고... 감동의 약 30여분을 마지막으로 장식한 것도 역시 남영의 한시였다.    


全身四十年前累 (전신사십년전루) 온몸의 사십 년 쌓인 허물을

千斛淸淵洗盡休 (천곡청연세진휴) 천 섬의 맑은 물로 다 씻어 내리라.

塵土倘能生五內 (진토당능생오내) 티끌이 혹시라도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 (직금고복부귀류) 지금 당장 배를 갈라 물에 흘려보내리라  

  

 영상이 끝나며 우리들은 모두 일어나서 한참동안 감동의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것을 본 관리인도 빙그레 웃으며 자랑스럽고 뿌듯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기념관을 나와서 다시 산천재로 향하였는데, 산천재 기둥에도 시가 적혀있었다.  

   

春山底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 산 어디든지 향기로운 풀 없으리요만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오로지 하늘과 맞닿은 천왕봉만을 사랑하였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有餘(은하십리끽유여) 은빛 물줄기 10리나 흐르니 마시고도 남겠네    


 조식은 늘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방울소리를 들으며 조금도 방심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늘 깨어있기를 경계하고, 조금이라도 사심이 생기면 칼로 베어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티끌이 쌓이면 배를 칼로 갈라 씻어내겠다는 의지, 그리고 조금의 욕심도 없이 물만 먹고 살아도 충분하다는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어떤 권력도 왕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 걸고 직언을 날리는 의기가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정인홍 곽재우 등등 나라를 구한 수많은 의병장을 제자로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산천제 마루에 앉아서 조식이 심은 남명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명의 정신처럼 고매한 남명매 향기 아래 서서 남명이 그토록 사랑했던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명이 늘 듣던 강물소리, 천년을 지나서도 변하지 않고 지금도 우리에게 늘 깨어있으라고 소리 내며 흐르는 덕천강 강물소리를 한참 서서 들었다. 

  평택에 도착하여 술자리를 가졌는데, 답사의 감동에 젖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중압감도 망각하고 대담해져서, 우리는 밤이 늦도록 조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고, 다들 술에 취했다. 옆에 앉은 진홍이형은 회사 사장인데, 이제부터는 직원들한테 잔소리도 적게 하고, 칭찬도 많이 하고, 많이 이해해 주고, 월급도 올려줘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산천재의 답사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회원 모두가 시를 안다는 것이다. 시를 볼 줄 알고 시에 감동할 줄 안다는 것이다. 시를 읽어 보면 그 시를 쓴 사람이 보이는데, 우리 회원들은 모두가 시를 통해 사람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을 지녔기 때문에 함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답사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멤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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