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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Nov 24. 2021

나무를 잘랐다

나무를 잘랐다


노진욱


계곡 좋은 산사(山寺) 마당가에 서 있던

몇 십년 된 소나무 벚나무들 …

수십 번 전기톱으로 으르렁거리니

결국 끼이익 비명과 함께 비탈 밑으로 쓰러졌다


벚나무 서슬에 치어살던 배롱나무 가지들이 제법 우아하고

멀찍이 소나무 등 뒤에 가리었던 삼나무가

위세 높은 종탑처럼 역삼각의 활력으로 허공을 찌른다


문득 


나는


언제 너에게서 베어졌던가

왜 너에게서 지워졌던가


너의 무엇을 살리기 위해, 가꾸고 돋보이기 위해

생의 골격이 우지끈 박살나고

어리둥절 골짝으로 쳐박혔던가


그리고 이제 나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야 하는가


나무들이 잘려나간 자리

방에 앉아 내다보니

가을 햇살 가득하고 하늘 밖이 넓고 훤하다


내가 사라진 자리도 여기 풍경처럼

환하고 시원하면 좋겠다

너의 나무가 더욱 돋보이고 맘껏 가지 뻗는

햇살 가득한 너른 터전이면 좋겠다


나 때문에 베어진 수많은 나무들처럼… 그 자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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