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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Feb 09. 2021

가지치기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봄내음을 맡았는지

비탈 밭 사과 과수원마다 농부들이

세모꼴의 사다리를 받쳐놓고

어지럽게 자란 가지들을 골라 자르고 있다.

작은 가지들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전지가위로

필요 없다 생각되는 큰 줄기는 날카로운 톱날을 번쩍이며...

단호하다. 툭툭 

희끗희끗 잔설 깔린 바닥 가득히 순식간에 

잘려나간 영혼들이 즐비하다.

나뒹구는 가지를 들어보니, 발그레한 피부 속에 푸른 온기가 쌩쌩하다.

꽃을 피울 꽃눈 잎을 피울 잎눈도

봄을 찾는 처녀애들처럼 발랄하게 부풀어 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하나가

잘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가지에게 말했다

“ 어머, 어쩌냐! 너무 아프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잘려 죽다니! 너무 억울하지?

불쌍해! 나도 아프다!“

하며 잘린 상처마다 방울방울 눈물 맺는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진 가지가 낮게 숨을 모아 

“괜찮아! 내 생명은 살아있어!

내 본래 목숨은 내가 붙어있던 뿌리와 줄기야! 그리고 함께 있던 너희들이야!

뿌리와 줄기가 살아있는 한

다시 태어나 꽃을 피우고 향기로운 열매 맺을 거야!

이제, 나는

열심히 마르고 열심히 부서져 흙이 되어

뿌리를 타고 줄기를 타고 우리들의 생명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러니 아파하지 마! 

너도 나도 현재를 최선으로 살아야 해!

그래야 아름다울 수 있어!

내년이건 후년이건 환한 어느 날, 너의 튼실한 옆구리에 

앙증맞은 싹을 내밀고 

네 가지로 내가 솟아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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