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진욱 Apr 08. 2022

대관령국사성황사

 바람은 높은 곳을 공략하고, 구름은 높은 곳을 뒤덮는다. 하여 인간사회나 자연이나 높은 자리는 늘 파란이 많고, 변화가 많고, 감추어진 비밀이 많고, 진실 또한 베일에 쌓여 있다. 그래서 적이 많은 긴장상태다.

 그러나 대관령의 산들은 적대적이지 않다. 자세를 낮추고 바짝 엎드려 바람을 흘려보낸다. 아니 더 나아가 바람과 구름을 맞아들여 고랭지 채소들과 양떼목장의 풀들을 싱싱하게 길러낸다. 하여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이국적인 풍취에 취해, 마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목소리와 발걸음이 통통 튀는 요들송이다.

 대관령의 우두머리 선자령은 일년 내내 남녀노소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등산이 아닌 완만한 산책이기 때문이다. 바람 속의 산책, 구름 속의 산책이다. 바람과 구름이 살갗을 스쳐 땀이 날 틈도 없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유순하고 온화해야 붐빈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힘들고 까다로운 곳은 특별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피해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다. 설악이나 지리를 찾는 사람들처럼 우쭐거리지 않는다, 평등과 평화가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 사람들이다.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여름에는 이름 모를 수천수만 야생화가, 가을에는 은은한 단풍과 억새가, 겨울에는 눈부시게 하얀 설화가 지천으로 피어 환상적인 동화 속 요정의 나라를 만든다. 남녀 노소 누구나 쉽게 깔깔거리며 재잘거리며 걸어다닐 수 있는 천상이다. 돈키호테의 풍차가 저절로 가슴으로 들어와서 윙윙 힘차게 돌아가는 꿈이 살아있는 세상이다.

 이 대관령 깊고 아늑한 산자락에 대관령산신각과 대관령국사성황각이 있다. 산신각은 대관령 산신 김유신장군을 모신 곳이고, 대관령국사성황각은 국사 성황신 범일대사를 모신 곳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산신령 김유신 장군보다 성황신 범일대사가 더 장군처럼 생겼다. 자상한 고승의 얼굴이 아니다. 양 옆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백마를 타고 등에는 화살이 담긴 활통을 메고 손엔 활을 들고 있다. 치켜 올라간 눈썹과 응시하는 눈매가 매섭다. 

 온갖 역병과 재앙으로부터, 그리고 수시로 침범하던 왜구로부터 명주(지금 강릉) 땅을 지키려면 결코 자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정 속에는 파란이 숨어 있고, 평화 속에는 투쟁이, 자유 속에는 희생이 들어 있다. 삶을 평탄하게 유지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힘겨운 세상과의 싸움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곳 산신각과 성황각에는 신령스런 대관령의 기운을 얻어가려는 무속인들의 굿과 기도가 일년 내내 끝이지 않는다. 누각 안이 한적한 날이 없다. 통으로 손질된 돼지들의 살빛은 선명하고, 머리는 깨끗이 세수되어 웃고 있다. 어쩌면 죽어서도 웃음짓는 돼지들의 얼굴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문밖에서 참배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범일대사가 화살 하나를 뽑아들고 내 미간을 겨누며 호통친다.

“너는 누구냐?”

“너는 무엇이냐?”

‘네가 타고 있는 백마는 무엇이냐?“

‘네가 거느린 호랑이는 무엇이냐?“

“도대체 너는 네가 거느린 백마와 호랑이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하느냐?“

“이 세상에 테어나 너는 무엇을 이루려 하느냐”?

‘무엇을 위해 너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느냐?“

 저물어 오는 산길, 내려오는 내내 그 고함소리가 산울림으로 따라붙는다. 서늘하다. 머리에서 발끝으로 이어진 내 백두대간 전체가 우루루 흔들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범일국사와 강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