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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Apr 09. 2022

치악산 상원사 종각

 해발 1181미터 치악산 남대봉 아래, 광망한 허공을 품어 안은 상원사가 있다. 그리고 이 절 마당 끝 깎아지른 절벽 끝에 아찔하게 종각이 우뚝 서 있다. 처음에 나는 왜 하필 저곳에 종각을 세워 부처님이 바라보아야 할 무한광대한 산자락의 시야를 해칠까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절에 전해 내려오는 ‘은혜 갚은 까치’ 설화를 듣고, 왜 마당 끝 천애절벽에 종각을 세웠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은혜 갚은 까치 설화)

 옛날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까치들의 아우성이 워낙 다급하여 올려다 보니, 구렁이가 나무에 기어 올라, 까치 새끼들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마침 활을 가지고 있던 선비는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이고, 다시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날은 저물었다. 산속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을 따라 외딴 집에 들렀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고맙게도 좋은 음식과 술을 차려주었다. 선비는 아주 맛있게 먹고 피곤하여 잠이 들었는데, 목이 조이고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 보니, 큰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소리쳤다. 

 “나는 낮에 네놈이 활로 쏘아 죽인 구렁이의 아내다.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너를 잡아 먹어야겠다. 그러나 만약 날이 새기 전에 이 산에 있는 상원사 종이 세번 울리다면 부처님의 가호로 알고 너를 살려 주겠다.” 

 새벽은 다가와 선비가 절망하여 있는데, 기적처럼 상원사 범종이 ‘뎅뎅뎅’ 울렸다. 구렁이는 분해하며 ‘너를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고 싶었지만, 하늘이 너를 도우니 어쩔 수 없구나!’ 하며 선비를 풀어주었다. 선비가 이상히 여겨 상원사 종루 앞에 가 보니, 까치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죽음으로 새끼들을 구해 준 선비의 은혜를 갚은 것이다.

내 기꺼이 삶의 절벽 끝에 

나를 몰아 세운 것은

그대를 기다려서가 아니다

못 잊어서가 아니다

아직도 그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망망한 허공을 질러 달려드는

저 바람과 구름

주야장천(晝夜長川) 울부짖는 저 물소리

지는 해 뜨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그대를 다시 만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다시 사랑할까 무서워서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기다릴까 섬뜩해서가 결코 아니다


내 기꺼이 망망한 

삶의 허공 끝에 

내 목줄 매달아 버티는 것은


저 황당한 상원사 종소리처럼

그 무모한 까치의 결단처럼


세상과 부딪쳐 깨어지기 위해서다

운명과 맞서 부서지기 위해서다

부서지고 깨어짐에 진정 두려워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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