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진욱 May 26. 2022

산나물과 해탈승


 삼척 두타산에 올랐다. 댓제에서 정상까지 편도 약 6키로의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은 백두대간 능선으로서 오르락내리락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오월의 신록이 워낙 연초록으로 화사하고 연연하여 발걸음이 조금도 지치지 않는다. 정상 가까이 이르니 수많은 얼레지 꽃이 지천으로 피어서 등산로 양 옆뿐 아니라 능선 전체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얼레지는 초봄 일찍 꽃을 피우는 식물인데, 어린 잎은 나물로 먹는다. 좀더 신경 써서 둘러보니 얼레지뿐 아니라, 눈개승마 군락이 밭을 이루고 있고, 종이나물과 당귀순까지 눈에 들어 온다. 

 극히 일부의 독초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산천의 봄에 돋아나는 새순과 새싹의 대부분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순들은 부드럽고 순하고 독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물들이 자라서 어느 정도 크면, 줄기와 잎이 뻗뻗해지고 억세지고 독성이 강해져 쓴맛이 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어리고 연한 새순과 새싹만을 식용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고 순한 사람만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영양분이 된다. 즐거움이 될 수 있고 기쁨이 될 수 있다. 다 쇤 나물처럼 자기 고집으로 뻗뻗해지고 독기가 생기면 누구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 다가가도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피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주관, 자기의 가치관, 자기의 신념과 이념, 이데올로기를 자랑하지만, 사실 그것은 다 쇠어버린 산나물처럼 뻗뻗해지는 것이고 독해지는 것이다. 혼자 뻗뻗뻗하게 고개 쳐들고 자기는 잘 산다고 자랑하지만, 결국 가을날 허무하게 말라 비틀어지는 풀잎처럼 무가치한 삶인 것이다.

 나이가 많 건 적 건, 많이 배웠 건, 많이 느꼈 건, 사람은 자기 고집을 버려야 한다. 자기 판단 자기 주장만 고수하지 말고, 주변의 상황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하고, 나 아닌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 진리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선승들이 추구하는 해탈 역시 이와 맥락이 같다. 그들이 추구하는 해탈은 식물성이다. 즉 식물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감각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느끼되, 그것들을 자기의 판단으로 해석하고 결정하여 옳다 그르다 시비하거나 그것으로 고통받거나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해탈의 경지이다.

 우리는 식물성이 되어야 한다. 특히 어린 새순이 되고 새싹이 되어야 한다. 부드럽고 독기 없는 산나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와! 하며 다가와 나의 일부분을 뜯고 가져가는 즐거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좀 손해 보아도 다른 사람의 피와 살이 되는 그럼 삶을 살아야 한다. 어차피 가을이 되면 허무하게 말라 비틀어져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우리의 몸뚱아리 아닌가? 이것을 남들에게 좀 나누어 주며 살아야 진정 가치있는 삶인 것이다.

 우리 모두 식물성이 되자! 저 높고 깊은 두타산이 되고, 그곳에서 자라는 연하고 부드러운 산나물이 되자!


                    

작가의 이전글 봄 봄 봄 봄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