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느티의 자유
해 저무는 칠월
왕릉 앞 오랜 느티나무 벤치에 누우면
아! 나는 자유다
바람이 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새 소리가 잎을 흔들고 사라지듯
자유가 내 뼈를 스치고 내 살을 흔들고
골수까지 영혼까지
아! 나는 텅텅 빈 자유다
저 늙은 느티 줄기에
저 굳은 느티 가지에
저 무성한 느티 잎사귀 그 어디에도
움켜쥐는 손 없듯이
돈도 명예도 여인도
어느 하나 움켜쥐지 못한 나는
아! 나는 온 몸뚱아리가 허공이다
원자처럼 숭숭 뚫린 하늘이다 우주다
시간도 공간도 없이 날뛰는
양자역학이다
사악사악 바람이 잎을 스치는 소리처럼
내 핏줄 속에서도
촤-촤- 계곡물같은 자유가 흐른다
하늘빛이 달라지듯 내 색깔도 바뀐다
하여 바람처럼 물처럼 노을처럼 나는 자유다
오랜 왕궁 느티나무 아래 누워
보랏빛으로 저무는 하늘을 보면
언듯언듯 추억이 지나가고 또 새록새록
얼굴들이 나타났다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는 나는
저 늙은 느티나무의 자유다
노을처럼 둥둥 물들어가는 자유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해서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서
작은 미풍에도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허브 꽃 향기처럼
허공이 감당할 수 없는 자유
우주가 담아낼 수도 없는 자유
아! 나는 나의
감각을 넘어선 무한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