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진욱 Jul 05. 2022

늙은 느티의 자유

늙은 느티의 자유


해 저무는 칠월

왕릉 앞 오랜 느티나무 벤치에 누우면

아! 나는 자유다

바람이 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새 소리가 잎을 흔들고 사라지듯

자유가 내 뼈를 스치고 내 살을 흔들고

골수까지 영혼까지

아! 나는 텅텅 빈 자유다

저 늙은 느티 줄기에

저 굳은 느티 가지에

저 무성한 느티 잎사귀 그 어디에도

움켜쥐는 손 없듯이

돈도 명예도 여인도

어느 하나 움켜쥐지 못한 나는

아! 나는 온 몸뚱아리가 허공이다

원자처럼 숭숭 뚫린 하늘이다 우주다

시간도 공간도 없이 날뛰는 

양자역학이다

사악사악 바람이 잎을 스치는 소리처럼

내 핏줄 속에서도

촤-촤- 계곡물같은 자유가 흐른다

하늘빛이 달라지듯 내 색깔도 바뀐다

하여 바람처럼 물처럼 노을처럼 나는 자유다

오랜 왕궁 느티나무 아래 누워

보랏빛으로 저무는 하늘을 보면

언듯언듯 추억이 지나가고 또 새록새록

얼굴들이 나타났다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는 나는

저 늙은 느티나무의 자유다

노을처럼 둥둥 물들어가는 자유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해서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서

작은 미풍에도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허브 꽃 향기처럼 

허공이 감당할 수 없는 자유 

우주가 담아낼 수도 없는 자유 

아! 나는 나의

감각을 넘어선 무한의 자유다


작가의 이전글 산나물과 해탈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