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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Jul 11. 2022

순, 유월의 핏줄

유월의 대지는

허공을 찌르는 순으로 물결친다

논에는 벼들이 호수엔 갈대들이 들판엔 잡초들이

여리고 순한 순들을 촉수처럼 뻗어

허공으로 나아간다


저 단단한 허공에 저 막막한 새로움에 

첫 발을 내밀때

아 얼마나 두렵고 설레일 것인가

하여 순들은 늘 흔들린다 

전율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첫손을 뻗을 때

그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신기할 것인가

모든 곳이 새로움이니

어느 한곳을 고집하거나 집착하지 못한다

빛을 향해

단지 생명을 뻗을 뿐이다

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손길은

언제나 가늘고 섬세하고 연하고 부드럽다

굳어진 고집의 손가락은

결코 어떤 새로움의 세계와도 악수할 수 없다

신기함의 눈빛과 마주할 수 없다

순하고 여린 손길만이 새로움과 인사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이미 자리잡은 뿌리는 생명이 아니다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줄기도 생명은 아니다

순이 없는 존재는 죽은 것이다

뿌리도 줄기도 늘 깨어 있고 쉬지 않고

잠들지 않고 새로움으로 나아가야 생명이다

하여 생명은 연하고 순하고 부드럽고

그러나 창칼처럼 뾰족하다

그 뽀족함으로 스스로를 찢고 세상을 뚫는다

이것만이 젊음이다 희망이다

날마다 날마다의 푸르른 청춘이다


자전거 한대가

낡은 바퀴를 통통거리며 유월의 들판을 질주한다

낯선 대기 속으로 풍경 속으로

감각의 핸들을 밀어넣는다

부드럽고 연약한 다리의 실핏줄이

두려움으로 설레임으로 터질 듯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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