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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Jul 11. 2022

저기 그리움이 젖은 가로등 아래 서 있구나


빗소리에 잠을 깨어 창문을 연다

무채색의 하늘과 바다가 자매처럼 투닥거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가로등 불빛들이

슬픔 가득한 시선을 준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한데 모아 마당으로 던지는

추녀 끝 낙숫물은

졸음 가득 머금은 갖난아이 잠투정처럼

잦아지다가 자지러지고 또 잠드는 듯 하다가 다시 깨어나고

마을 모두가 숨을 죽이는데

간간이 어느 어두운 후미진 구석에서 나온

길고양이들의 교성이

서툰 밤손님처럼 휘어진 골목길에 발자국을 찍고 있다

카카오톡 초대방처럼 뻗은 전선줄들은

어지러이 장방형으로 펴지고

그 위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반짝이는 물꽃이 되어

먼 날 당신의 수줍은 치아를 보듯

내 눈을 집중시킨다

밤은 먼저 귀를 깨우고 눈을 틔우고

마음을 일어나 걷게 한다

무채색의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마음은

늘 비에 젖어 있다

하여 발걸음이 그리움으로 질퍽거린다

하여 비 내리는 밤은

결국 텅빈 그리움을 되새김하는 시간이다

새벽이 올 때까지

비에 젖은 저 가로등 불빛이 제풀에 

꺽이고 스러질 때까지

지나간 추억의 되새김의 되새김이다

빛나는 사람 하나 불쑥 나타나듯 아침이 올 때까지

처마 끝 낙숫물 소리가

마지막 두드림을 스르르 접고

되돌아 설 때까지 그 발걸음마저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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