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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Aug 03. 2020

다슬기를 잡으며


  미술을 전공한 유진이가 서울서 내려와 아내와 셋이 영월 주천강에 다슬기를 잡으러 갔다. 

  바지를 걷고 물살이 거대한 먹구렁이처럼 기어 흐르는 강물 속 바위 위를 더듬어 올갱이를 잡는다는 것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서늘함이 지배한다. 아차! 순간 바닥 없는 심연의 아득함에 몸도 마음도 덜컥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어깨까지 들이밀며 까만 바위에 까맣게 붙은 다슬기를 하나, 둘 잡아 내다가 나는 문득 다슬기의 눈이 궁금하다. 잡아 건진 다슬기는 아무리 살펴도 딱딱한 껍질만 느껴질 뿐, 눈도 코도 귀도 입도 그리고 팔도 다리도 구별할 수가 없다. 그래도 다슬기 어딘가엔 우리의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미각을 대신하는 다슬기의 감각기관과 우리의 팔과 손을 대신하는 신체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느닷없이 덥쳐오는 나의 얼굴과 손바닥을 보았을 것이고, 기겁하다 내 손에 잡혔을 것이다.

  처음으로 다슬기잡이 재미에 마냥 상기된 유진이를 옆으로 불러, 흘러오는 강물처럼 일어나는 내 생각들을 싱그런 강바람에 잔잔히 흘려 보았다.

“ 현대 미술의 다양성이 저런 것 아닐까.“

“ 강물을 바라볼 때, 사람의 눈이 아니라 물가에 앉은 바위의 눈, 또는 물 속에 잠긴 바위의 눈, 물살에 밀려 구르는 모래알의 눈, 또는 강가 꽃대궁에 앉아 하늘거리는 잠자리의 눈.. “

“ 아무튼 이 다양한 사물들이 강물을 바라보는 눈들은 제각각 형태도 모양도 느낌도 촉감도 다를 것이다.”

“ 미술에서 새로운 분야나 창의성을 찾는다면, 자신의 시각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각, 그리고 인간의 눈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술가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눈으로 자신들의 경험으로 자신들의 감각으로 잡아낸 세상을 자기의 기법으로 표현하고, 자기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 다른 사람의 눈을 가질 때,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사물들의 감각으로 다른 존재들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문학도 예술도 삶도 더 깊고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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