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진욱 Aug 04. 2020

수고로움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중생의 현실을 ‘고해의 바다’라고 한다. 산다는 것이 끝없는 고뇌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이고,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체를 지니고 있는 한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의 항상함이 없다.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곧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고, 끊임없는 움직임은 곧 몸과 마음을 늘 수고로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고로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기본적으로 육체적인 수고로움과 정신적인 수고로움이 있겠고, 미치는 범주에 따라 자기자신을 위한 수고로움, 가족을 위한 수고로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수고로움, 나아가 인류를 위한 수고로움이 있을 것이다.

 자기자신을 위한 수고로움도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육체적으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입기 위한 수로고움이 있는 반면, 지식이나 학식을 쌓기 위하여 또는 예술적 경지를 높이기 위하여, 더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고양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한 수고로움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좋은 구경을 하며 육체적 안락과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수고로움이 있고, 나의 형제와 자식들이 더 고양된 학식과 예술을 누리고 완성된 인품과 영혼의 성숙을 이루도록 이끌고 뒷받침하는 수고로움이 있을 것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육체와 정신을 수고로이 한 위대한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지옥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 백성의 평안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심신을 고단히 했던 세종임금.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 이황, 서화와 문인화의 경지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킨 추사 김정희. 한국 불교를 새롭게 창출해 낸 원효..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신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고유문화를 가지고 강물처럼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온 정신과 육체를 수고로이 했던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인. 이들의 정신은 가히 인간을 넘어 하늘에 닿아,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꿰뚫어, 우리들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어차피 인생은 ‘고해의 바다’요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그리고 그 기회가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 가치 있는 것일까? 나만을 위해, 내 가족만을 위해, 그것도 나와 내 가족의 육체적 안락만을 위해 한번 뿐인 이 삶을 수고로이 하다가 죽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학창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설렜다. 그런데 그 야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준 선생님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야망이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 판사나 검사가 되고, 큰 과학자나 기업가가 되는 것이 야망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더 높은 지위,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명성을 날리는 것이 큰 야망인 줄 알았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며, 이 얼마나 형편없는 교육을 받아온 것이냐.
  요즘 티비를 보면 온통 오락이나 예능, 요리나 여행, 아니면 막장 드라마 일색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의 길이나, 인류의 행복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은커녕, 개인의 인격이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인기 영합도 문제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원하는 나 자신, 먹고 마시고 놀고 쓰는데 만 심취하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예전에는 가난하더라도 학문과 인격이 높은 사람은 어디서나 존경받고 대접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머리는 텅 비고 인격은 바닥이라도 좋은 차 좋은 집에서 명품을 휘감고 다니며 돈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다. 오죽하면 예능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도 아는 문제를 틀려놓고 깔깔거리고, 자신들의 무식을 아주 대놓고 자랑하고, 또 그것을 보고 예능감이 뛰어나다고 추켜세우는 세상이 아닌가.

 물론 나 같은 범인들이 석가나 예수의 삶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들이 살아낸 수고로운 삶은 도무지 흉내 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만큼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차피 한번 태어났다 죽는 인생을,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평생토록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가치한 짓인가. 

 책 한권을 읽더라도 티비프로그램 하나를 보더라도 좀 더 가치 있는 것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먹고 마시는 데만 빠져 살지 말고 학문과 예술을 공부하여 스스로의 영혼을 고양시키는데 조금이라도 힘써야 한다. 

 야망이란 청소년을 가르치기 위한 구호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어야할 삶의 목표요, 솔선수범해야할 실천 덕목이다. 야망이란 것은 나와 내 가족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옹졸하고 이기적인 삶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인류의 문화와 예술을 높이기 위해, 인류의 영혼과 정신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몸과 마음을 수고로이 하는 태양과 같은 삶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슬기를 잡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