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 살아남기

feat. 헤겔

by 왜살지

교육행정 신규 2주차. 업무가 익숙해져 가는 만큼 회의감도 커진다. 네시 반에 퇴근한다는 말만 듣고 이 일을 택했다. 그 점에선 좋다. 그러나 직업을 선택할 때, 일의 성격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진 않았었다. 이 일에는 내재적이며 고질적인, 뿌리 깊은 문제들이 있었다.


먼저 업무 환경이 수직적이다. 실장, 차석, 삼석이란 용어부터 그렇다. 계층화된 직책은 신분과 다를 바 없다. 신분은 권위를 보증한다. 실장은 후임자들을 관리·감독한다. 후임자는 실장에 의해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한다. 같은 근대적 조직인 군대와 유사하다. 법적으로 수정되었다는 상명하복은 제도상 잔존한다. 수직적 업무환경은 유교 문화와 시너지 효과를 낸다.

실장이 되려면 연차가 쌓여야 하고, 연차가 쌓이려면 나이가 쌓여야 한다. 나이가 쌓이면 대접받는 게 유교 문화다. 실장이 되면 이중으로 대접받고, 이중으로 권위를 얻는다. 저연차는 이중으로 굽실거려야 한다. 유교 문화는 한국인에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나이 든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젊은 누군가가 알고리즘에서 벗어나면 자동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헤겔은 이런 동양의 공동체정신에 대해 평한다.

"동양인이 파악하는 호화로움은 공동체를 대표하는 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모든 것은 공동체에 속하며, 어떤 개인도 공동체를 떠나 자기의 주관적 자유로 돌아가지 못한다. 상상의 부와 자연적인 부 모두가 공동체의 것이고, 주관의 자유도 공동체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영예도 개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절대적 존재 속에 있는 것이다." (역사철학강의 110)

개인은 학교 행정실 안에서 이중으로 부품이 된다. 동양의 공동체정신으로 한 번, 수직적 업무 환경으로 한 번. 물론 공동체정신이 만든 국가, 즉 공동정신의 제도이니 그 성격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럼 대한민국에서 젊은 사람이 힘들지 않은 직업이 어딨냐 하면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뿌리부터 글러먹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정말 교육행정직의 본질에 맞닿는 문제다. 교육행정직은 돈을 다루는 일을 한다. 보통 학교에 신규로 들어가면 급여직을 맡는다. 나라에서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 내 돈도 내가 준다. 그런데 돈을 만지는 직업이란 본래가 비천하고 악취가 나는 법이다. 돈이 욕망의 수치적 표현이란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악취 나는 욕망을 숫자로 바꾸었을 뿐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학교에서 보면 교장이나 실장)을 배가 터질 듯 먹어도 식욕이 줄지 않는 기형 돼지로 비유할 수 있다. 돈을 만지는 직업은 그것들이 싼 똥을 치우는 사람이다. 교행은 자본주의 사회의 오물받이인 것이다. 행정실의 네모난 모니터는 변기다. 그곳에선 코를 찌르다 못해 썩히는 악취가 난다. 나는 악취를 참고 돼지들 먹이를 먹이고 똥을 받아낸다. 그야말로 학교의 시궁창이자 변기 관리자이다. 내 비위가 정년까지, 아니 다른 직업을 구할 때까지 버텨 줄는지 모르겠다. 이 오물들을 가지고 실장과 직원들과 마찰할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똥을 퍼먹고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이러니 내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 화가 안 날 내야 안 날 수가 없다. 그들은 비열한 거짓말쟁이다. 한 놈은 극한의 제일 꼰대 체제에서 자유가 점차 확대되어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뻥카를 쳤고, 한 놈은 노동자가 들고일어나 생산수단을 공유해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뻥카를 쳤다. 망할 사상가 놈들.


각설하고, 오물통에 시험을 봐서 빠진 지능을 갖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내 운명이 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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