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실장님, 정말로 실장님은 실존하고 계십니까?
아아 실장님, 저는 행정실이 존재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행정실은 실존하는 것입니까? 실존한다면 왜 이런 방식으로 실존합니까?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정실의 법과 규칙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제도와 규칙은 행정실의 본질을 이루고 기둥이 되어 행정실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행정실은 당최 무엇입니까?
행정실은 일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가 결재하러 찾아갔을 때 실장님은 이어폰을 꼽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규칙을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행정실의 대표인 행정실장님이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설마 법과 규칙을 지키는 척만 하고 계신 것입니까? 저는 이제부터 당당하게 전자책을 화면 한가득 펼쳐놓고 보겠습니다. 저는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된다면 행정실장님은 왜 그러고 계셨던 겁니까?
게다가 행정실장님이 돈은 훨씬 더 많이 받아가고 계십니다. 저는 이번 달 대충 190만원 언저리의 돈을 받았습니다. 행정실장님은 580만원 상당의 돈을 받으셨더군요. 그 돈은 무엇의 대가인 겁니까? 회의에 잠깐 갔다 와서 일을 가져온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흩뿌린다는 명목으로? 그러나 실장님은 일을 가져올 뿐 하는 건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이지 않습니까. 일을 가져와 놓고는 본인은 지식인사이드나 수영 강습 유튜브를 시청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식인사이드나 수영 강습 유튜브 시청이 그토록 값나가고 중요한 일입니까? 아니면 남몰래 다른 어떤 가치를 창조해내고 있으신 겁니까...
아아, 네. 실장님은 제가 한 일을 검토하고 책임을 지신다고요. 그러나 제가 한 일이 옳은지 그른지의 기준조차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저는 일하러 온 지 3주도 안 된 제게 연로수당에 대해 물으셨던 일을 기억합니다ᆞ. 저는 일 한지 3주 되었었습니다. 실장님은 연차가 30년이십니다. 아무리 제가 급여 담당이라지만 제가 알고 실장님이 모르는 게 맞는 것입니까? 말년 병장도 신병을 갈구긴 하지만 신병에게 일에 대해 물어보진 않습니다. 아아, 실장님은 퇴직을 앞두고도 신규에게 일에 대해 물어보는 끊임없는 배움의 마인드를 지니고 계신 것이었군요. 제가 논어에서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읽은 듯하나 머리가 나빠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은 어떤 책임을 지신단 말입니까. 한 번은 제게 교무부에서 작성한 가정통신문을 검토하라고 시키셨습니다. 가정통신문은 교무부 담당이 아닙니까? 왜 다른 부서 담당인 일을 이제 2주가 넘어 일을 아득바득 배우고 있는 제게 짬때리는 겁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장실님은 파일에 제 이름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책임도 저에게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까? 실장님이 책임지는 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 지식 인사이드와 수영 강의 유튜브의 조회수를 담당하고 계신 것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수입일계표를 맞게 올렸는데 딴지를 거셔 놓고 합계를 틀려서 제가 옳았다는 게 판명난 경우나 급여 대장에서 나이스가 처리한 기타공제내역의 계산식을 제게 설명하라고 하셨던 것까지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 직업을 가진 지 3주밖에 안 되었고 실장님은 30년 동안 일하셨다는 것도 반복해서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을 다 말하고자 하면 실장님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해야 할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어, 생각해 보니 이제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장실님은 실존하는 인간입니까? 행정실이라는 공간은 이 세계에 정말 존재하는 장소입니까? 이만큼의 비합리성이 합리적인 체계 위에 지탱된다는 사실이 제 모자란 두뇌로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고역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비합리성의 대표가 가장 합리적인 척한다는 사실은 구역질이 나게 합니다. 아, 실장님이 인간이라는 종 안에 속해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아아, 그렇다면 저는 인간이길 포기하겠습니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제 정말 구제 불능으로 오염되어 도무지 알아낼 수 없어져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