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

자살 고민하기

by 왜살지

출근하면 시간이 쏜살같이 간다. 눈을 감았다 뜨면 점심을 먹는다. 또 눈을 감았다 뜨면 네시 반이 되어 행정실이 텅 빈다. 나는 혼자 남아 밀린 업무를 본다. 퇴근하면 지친다. 오늘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반성하거나 숙고할 시간은 없다. 업무가 생기면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퇴근해서 집에서 잘 수 있다. 우울하지는 않다. 우울증 약도 끊었다. 다만 항상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 하루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무반성적으로 흘려보내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삶은 죄악이다. 우리는 숨쉬면서 죄를 짓는다. 섭취의 죄목은 살생이고, 생업의 죄목은 탐욕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나를 불쾌하게 하고, 나도 살아서 타인들을 불쾌하게 한다. 인간의 원죄는 생명이고 자의식은 죄의식이다. 윤회를 끊으라는 부처의 명령은 원죄의 속죄가 자살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비열한 파렴치한이다. 살아가며 죄짓는 것보다 더 많이 속죄할 자신은 없다. 대신 자살할 생각은 있다. 삶은 악취나기 때문이다.

나의 자살은 선의지의 차선책은 아니다. 일찍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자살을 고민한다. 세상에선 어떤 의미도 가치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 많은 철학들은 세상을 오해하는 갖가지 방법들일 뿐이었다. 나는 라이프니츠가 반대로 말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세상은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악한 세계이다. 세계는 무질서에서 태어나 무질서로 향하고 생명은 악에서 태어나 악으로 향한다. 자연과 세계사가 절대악정신의 두 가지 표현이라면, 도덕은 시간의 뒷걸음질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자살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자살은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연명의 변명을 여기서 찾았다. 불가역적인 어떤 행위의 실행에는 완벽한 검증과 확실성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철저해야 하고 반론의 여지가 있으면 안 된다. 혹여나 앞의 두 문단이 틀렸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살아야 한다. 살아서 숙고하고 검증해야 한다. 나는 연명의 변명을 여기서 찾았다.

나는 직업을 가졌다. 세계사(악한, 아마도)의 공동정신에 봉사하고 있으며 동양의 구역질나는 공동체정신(유교 문화)에도 순응하고 있다. 그러니 애써 고민이라도 할 수밖에. 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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