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찟한 생각 (Feat. 소설 『생명연습』)

닫힌 인간

by 왜살지

나는 작가가 되기를 단념했었다. 그로부터 1년쯤 전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에게는 순수한 이상은 없었더래도 현실과 이상의 참아줄 수 있는 타협은 있었다.

이상은 현실의 옷을 입었을지언정 어떤 형태로든 내 생명과 함께 살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소설이 한 편 두 편 실패했다. 더 쓴다 해서 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샌가 나는 현실의 폭력에 무릎꿇고 있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고 그러한 변절에 편안해하고 있었다. 이 편안함에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생명을 옥죄어왔던 현실에 투항함으로써, 이상을 포기함으로써, 나는 살 수 있었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서 이미 죽어버린 듯 느껴졌다. 그리고 그 죽음이 성장인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다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젊음의 이상을 그런대로 포기하며, 성장하며, 현실과 발맞추어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정도씩은,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한 운명을 지닌 사람들을 김승옥의 소설에서 본다.

소설 『생명연습』에서는 저마다의 현실에 충돌하고 굴복하는, 닫힌 인간들이 열거된다.


“저 학생”은 요즘 유행을 따르기 위해 머리와 눈썹을 밀어버린다.
한 교수는 런던에 유학을 가기 위해 그토록 사랑했던 정순을 저버린다.
영수라는 친구는 “참 못마땅한 일임에도” 최음제를 사용한다.
나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뒤 생계를 위해 다른 남자들을 맞는다.
만화가 오선생은 “손이 떨려서 그만 자를 갖다대고 그려버린다.”


이 반(半)자발적인 굴복들에서 한때 인물의 내부와 외부가 통하고 있었던 문들이 영원히 닫혀 버린다.

내부는 감춰진다. 한때의 이상은 처음에는 외면상으로, 나중에는 그들 자신에게서까지 망각된다. 이러한 속화의 과정에서 그들은 닫힌 인간이 된다.


소설은 그들이 닫아둔 곳을 파고든다. 그곳에는 자기만의 신념이 있고 사랑이 있고 순수했던 이상이 있다.

그곳에는 자기 세계가 있다. “‘자기 세계’라면 분명히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지하실에 감추며, 성벽으로 감싸며, 영영 닫힌 채 존재한다.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세계’를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성곽에서도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닫힌 인간들을 단순히 늘어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이 있고 눈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가 있고 사랑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국 닫히지 못한, 그렇다고 열린 채로 존재하지도 못하게 된 한 명의 인간을 그린다.

“그곳은 지옥이었고 형은 지옥을 지키는 마귀였다. (중략) 마귀의 상대자는 물론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눈에 불을 켠 채 이겼고 이겼으나 복종했다.”


나의 형은 판잣집의 다락에서 살며 그곳에서 자기 세계를 만든다. 그의 세계는 지옥으로 표현된다. 그의 지옥은 어머니에 적대함으로써 만들어진다.


6.25사변의 현실에 어머니는 죽은 남편을 저버린, 즉 닫힌 인간이다. 어머니는 낯선 남자들을 계속해서 바꿔 가며 집에 들인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또 생계를 위해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형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다. 형은 닫힌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형에게 연애를 권하는 것은 형이 현실의 법칙에 굴복하라는, 형도 닫힌 인간이 되라는 회유를 뜻한다.


“연애는 네 문학공부에 어떤 자극이 될지도 모른다고 권했으나 형은 흥 하고 웃어 버렸다.”

형은 어머니와의 화해를 거부한다. “아무리 전쟁중이라도 어머니가 미쳐버린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나와 누나는 형과 어머니의 갈등을 지켜본다. 나와 누나는 형과 어머니가 공존할 수 있는 비밀의 왕국을 찾는다.

그곳에는 “한 오라기의 죄도 없다.” “피하려고 애쓸 패륜도 아예 없고 그것의 온상을 만들어주는 고독도 없는 것이며 전쟁은 더구나 있을 필요가 없다.”

그곳은 열린 세계이다. 나와 누나는 열린 세상을 현실의 땅 위에 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쉽게 부정된다.


나와 누나는 신의 명령에 의해 자기 생식기를 잘랐다고 말했던 선교사가 수음하는 장면을 본다.

신앙이 육욕이라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함을 보며, 나와 누나가 찾던 이상의 왕국은 스러진다.


“누나와 나는 얼마나 안타깝게 어느 화사한 왕국의 신기루(蜃氣樓)를 찾아 헤매었던 것일까!”


이제 형과 어머니의 갈등은 “영원히 풀어버릴 수 없는 오해”가 된다.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해변에서, 형은 어머니를 죽이자고 말한다. 나와 누나는 형을 죽인다.


형이 어머니를 죽이자고 했지만 나와 누나가 형을 죽인 것은 그가 닫힌 인간도 열린 인간도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절망. 절망. 누나와 나는 그 다음날 저녁, 등대가 있는 낭떠러지에서 밤 파도가 으르릉대는 해변으로 형을 떠밀었다. 우리는 결국 형 쪽을 택한 것이었다.”




생명연습의 세계는 닫힌 인간들의 닫힌 세계이다. 육이오 사변과 다른 몇몇 현실의 충격들에 인물들은 쉽게든 어렵게든 굴복할 뿐이다.


이런 세계에서 닫히기를 거부하는 형의 시도는 죽음으로 좌절된다. 그의 시도는 열리지도 닫히지도 못한 채로 끝이 난다. 나와 누나는 형을 죽이며, 형의 죽음을 지켜보며 생명을 연습한다.

생명은 자기를 숨기고 감추고 현실에 맞는 또다른 자기를 연기해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만 겨우 그리 비겁하게나마 살아갈 수 있음에, “나는 할 수 없이 또 한번 웃고 말았다.“




소설에서 닫힌 세계는 육이오 사변에서 유학을 가야 하는 상황으로, 육욕으로, 펜을 쥔 손의 떨림으로 확장한다.


닫힌 세계의 폭력은 가족들의 무시하는 듯한 시선으로, 친척 어른들의 다정하지만 동정어린 충고와 조언들로, 아픈 허리와 굽어가는 등, 항상 따가운 두 눈, 망가진 생활 패턴과 정신 상태로 나에게도 찾아왔다.

현실은 결국 나의 편이 아니었고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옥죄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굴복했고 얼마쯤은 죽어야만 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닫힌 인간들의 닫힌 세계는 그 시대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외려 더 교묘해진 방식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닫힌 세계에서 얼마간은 죽은 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문득 섬찟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든 서서히든 '언젠가 죽어버린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다. 이제 나는 결코 진짜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평생 살게 될 것이다.

아무리 부정해 보려고 해도, 이런 생각들에 성장이 일종의 상실로, 부끄러움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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