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글은 불순하다
어제 '응원받기' 기능을 열었다. 명목은 '응원받기'이지만 본질은 '구걸받기'이다. 나는 구걸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 그러나 탐욕적이다. 또 앞뒤가 맞지 않으며, 결국 물신숭배주의자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무릎꿇고 두 손을 벌리겠다. "돈 좀 주세요."
고백하자면, 나는 '응원하기' 기능만 연 것이 아니다. 내 글을 읽어달라고 별 짓을 다했다. 글들을 읽기 쉽게 퇴고했다. 이미지를 넣었다. '브런치북'에 묶어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 요일은 충동적으로 주 7일로 정했다. (그러니 가끔 약속을 못 지키더라도 용서해주길 바란다.) 이게 다 "내 글이 돈이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부끄럽다. 나는 '돈되는 글'의 불순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 되는 글'의 본질은 노동이다. 이런 글들은 예상 독자의 취향을 고려하고, 독자를 붙잡으려 하며,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내용으로 쓰인다. 독자는 곧 작가의 성과이고 자본이다. 작가는 "더 많은 독자"를 갈망하며, 증식하는 갈망은 자본주의 행동강령에 부합한다.
(덧붙이자면,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서 글은 작품이길 포기해야 한다. 작품의 성립은 독자를 배제하며, 그 어떤 작품도 독자의 관심을 끌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독자를 향한 갈망은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수밖에 없으니까.)
나도 '순수한' 작가가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작품은 삶에 봉사하기보다 죽음에 봉사해야 한다고 되뇄었다. 낮의 능률과 생산보다 밤의 꿈과 가능성을 지향하길 바랐었다. 그래, 작품은 독자를 배제하기 이전에 작가마저 배제해야 했었다......
"작가는 작품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죽는 것은 아닐까? 그 자신 이따금 가장 낯선 무위의 감정 속에서 그것을 예감하듯이."(문학의 공간, p.17.) (내가 이 문장에 빨간 밑줄을 그었던 때가 기억난다.)
그러니 나는 완전히 타락했다. 나는 구걸을 개시하며 내가 완전히 타락했음을 알리는 바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길 바란다. 나는 돈을 바라며, 내 글은 작품이길 포기했다.
나는 권고한다. '작품'을 바라는 그대들은 내 글을 읽지 말기를.
나는 국가에 봉사하는 공무원이다. 그러니까 그대들의 선처를 바란다. (사실 돈은 주지 않아도 된다. 나는 당신들의 트래픽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노리고 있다.) 대신 내가 그토록 닮고자 했었던 보르헤스의 '순수한' 몇 문장을 인용하며 마친다.
"하느님은 클레멘티눔 도서관이 소장한 사십만 권 중의 한 책에 있는 한 페이지의 글자들 중의 하나에 있어요. 내 부모들과 내 부모들의 부모들은 그 글자들을 찾았지요. 나도 그것을 찾느라 눈이 멀어 버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