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물』읽는 연휴 (푸코)

돈키호테

by 왜살지

벌써 연휴의 마지막 날. 아쉽지만 이만하면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휴 내내 말과 사물을 붙들고 있었다. 이제 반 정도 읽었다. 서양 근대 사상 400년을 요약해주는데 이정도 품은 들여야지, 암. 각설하고, 저번에 이어서 요약문을 쓰겠다.


1.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적 작품이다."(88)

르네상스 시대(16세기)의 에피스테메는 닮음이었다. 돈키호테에서는 기호-닮음의 관계가 기호-재현의 관계로 치환된다. 재현은 동일성과 차이의 에피스테메를 따른다. 유사성이 채우고 있던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이젠 재현이 채운다.


"돈키호테 자신이 기호의 형상을 띠고 있다. 그의 존재 전체는 언어, 텍스트, 인쇄된 용지, 이미 전사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서로 섞이는 말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에서 서로 닮은 사물들 사이를 편력하는 문자이다."(85)


"그는 근본 원리를 표명하는 유구한 서사시를 따름으로써만 기사가 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유래한 텍스트와 자기 자신이 동일한 성격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무엇을 하고 말할 것인지,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기호를 부여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참조해야 한다."(85~86)


"그러나 그가 모든 기호와 유사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가 기호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호가 이미 (눈에 보이는) 존재물과 더 이상 유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이야기의 내용 없는 기호를 현실로 가득 채워야 한다. 공훈은 정말로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징후로, 즉 언어의 기호가 사물 자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징후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승리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돈키호테는 책의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를 읽는다. 그리고 닮음의 번쩍거림만을 증거로 여긴다."(86~87)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을 광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그는 기호로 성립된 인간이다. 기호는 현실의 사물들 위로 떠오른다. 갑자기 떠오른 기호는 대응할(재현할) 사물을 찾아 헤맨다. 돈키호테의 편력은 기호가 사물 자체와 일치하고자 그 징후를 찾아내는 탐색의 기행이다.


"그의 여정 전체는 유사성의 추구이다. 그러나 이 닮음은 언제나 어긋나고, 이에 따라 애써 얻어 낸 증거는 웃음거리로 변하며, 책의 말은 한없이 공허한 상태로 남는다. 이 비유사성 자체가 맹목적으로 모방하게 되는 전범은 마법으로 처리된다. 기호 아래 은밀한 닮음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독해를 가능하게 한 마법은 이제 왜 유비가 언제나 어긋나는지를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에만 소용될 뿐이다."(87)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세계의 음화를 보여 주고, 문자는 세계의 산문이기를 멈추었고, 닮음과 기호의 오랜 일치는 무너졌고, 유사성은 기만하고 망상과 정신착란으로 바뀌고, 사물은 가소로운 동일성 속에 끈질기게 머물러 있고, 즉 이제는 현재의 모습일 뿐이고, 말은 채울 내용도 닮음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가고, 더 이상 사물을 나타내지 않으며, 먼지에 덮인 책의 지면들 사이에 잠들어 있다."(87)

"언어의 기호가 갖는 가치는 기호가 재현하는 것의 빈약할 허구일 뿐이다. 문자와 사물은 더 이상 유사하지 않다. 문자와 사물 사이에서 돈키호테는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닌다."(87)


돈키호테는 닮음을 조롱하기 위해 유사성을 추구하는 듯하다. 돈키호테는 기호이다. 기호는 사물을 재현하는데, 재현은 동일성과 차이의 에피스테메를 따른다. 돈키호테라는 기호는 닮음의 음각(陰角)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유사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유비는 어긋나고 마법이라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이전 시대의 에피스테메였던 닮음은 망상과 정신착란으로 바뀐다. 말과 사물은 분리된다.


"그렇지만 언어가 완전히 무력해지지는 않았다. 이제 언어는 새로운 힘을 지니게 되는데, 이 힘은 언어에 고유한 것이다. 이 소설의 2부에서 돈키호테는 1부를 읽은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은 실재 인물 돈키호테를 책의 주인공으로 알아본다. 세르반테스의 텍스트는 이중으로 접히고, 텍스트 자체의 두께 안으로 파묻히며, 그 자체로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88)

"소설의 1부와 2부 사이에서, 이 두 권의 간격에서, 그리고 이 두 권의 권위에 의해서만, 돈키호테는 오직 언어에만 빚지고 전적으로 말에만 내재하는 실재성을 얻었다. 돈키호테의 진실은 세계에 대한 말의 관계가 아니라, 언어적 표지들이 서로 엮이면서 생겨나게 하는 그 얇고 일정한 관계에 있다. ... 말이 이제 막 기호로서의 성격만을 갖게 된 것이다."(88)


돈키호테의 2부에서는 1부를 재현한다. 2부는 전적으로 언어와 말에서만 비롯하는 실재성을 얻는다. 세계-말의 관계가 언어-언어의 관계로 대치된다. 말은 기호로서의 성격만을 갖는다. -> 푸코는 이를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오직 문학이 됨으로써만 고립된 처지를 벗어나 생경한 모습으로 재출현하게 되기 때문이며, 닮음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이성과 상상력의 시대인 그런 시대로 닮음이 들어서기 때문이다."(89)

"광인은 이제 무질서한 닮음의 인간이 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소설이나 연극에서 묘사되고 19세기의 정신의학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제도에 의해 관리된 이 인물은 유비 속에서 이성을 잃은 사람이다. 이 인물은 동일자와 타자의 역할을 뒤죽박죽으로 연기하는 자이다. 이 인물은 실제의 사물이 아닌 대른 것으로,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 이 인물은 매 순간 기호를 해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가치와 모든 비례를 뒤집는다."(89)

닮음과 광인, 에피스테메가 바뀌면서 비이성과 광기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 두 개념이다. 닮음은 문학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광인은 부양되는 일탈자, 불가결한 문화적 기능으로 이해됐었는데, 이제 환자와 무질서로 인식되고 배제된다.


"광인은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만 다른 존재이고, 도처에서 닮음과 닮음의 기호만을 보는 자이며, 광인에게는 모든 기호가 서로 유사하고 모든 닮음이 기호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


문학은 광인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광인은 동일성과 차이에 의해 규정된 기호들에서 사물들의 친근성, 유사성을 찾아낸다.


"시인은 명명되고 언제나 미리 규정된 차이 아래 파묻힌 사물들의 친근성, 흩어져 있는 사물들의 유사성을 다시 찾아내는 사람이다. 기존의 기호들 아래에서, 기존의 기호들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말이 사물의 보편적 닮음 속에서 반짝이던 시대를 상기시키는 더 근원적인 또다른 담론을 듣는다. 시인의 언어에서는 그토록 표명하기 어려운 동일자의 절대성으로 인해 기호들이 특권을 지닐 수 없다."(89)


시인은 차이의 에피스테메를 거부하고 사물들의 유사성을 찾아낸다. 기호가 아닌 닮음의 언어들이 반짝인다.


"시와 광기의 대면은 ... 언어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경험의 표지이다." "광인은 모든 기호를 모으고 모든 기호 사이에 닮음을 끊임없이 확산시킨다. 시인은 이와 대칭적인 기능을 확보하고, 알레고리의 역할을 맡으며, 기호들의 언어와 기호들의 아주 뚜렷한 특권의 작용 아래에서 '다른 언어'에, 말도 담론도 없는 닮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시인은 유사성을 말해 주는 기호에까지 유사성을 이르게 하고, 광인은 모든 기호를 결국 없애 버리는 닮음으로 모든 기호를 가득 채운다." "광인과 시인의 말은 낯섦과 힘의 항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얻는다. 광인과 시인 사이에서 어떤 지식의 공간이 열렸는데, 이 공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 서양 세계에서의 본질적인 단절 때문에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과 차이이다."(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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