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들의 무질서한 우글거림

by 왜살지

1.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모든 무한한 직선이란 어느 무한한 원주의 일부라고 여겼다. (알레프 159)

2.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명제는 없다고 생각했다.(같은 책, 152)

3. 관념론의 가르침에 의하면 '살다'와 '꿈꾸다'라는 동사는 모든 점에서 동의어이다.


유토피아(utopie): 없는 공간

헤테로토피아(heterotopie): 다른 공간, 없어야 할 곳에 있음.


보르헤스는 처음부터 비장소(utopie)로 건너뛰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현실의 장소(topie)에서 출발한다. 직선, 인간의 언어, '살다'라는 동사는 우리의 상식에 흔히 존재한다. 그는 상식의 개념들을 뛰어넘지 않고 상식의 토양을, 즉 개념들의 질서를 파괴한다.


1. 직선을 무한히 늘리면 원주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사물들의 경계를 분쇄한다. 직선이 원주와 구별되지 않는다면, 직선의 일부인 선분도 곡률을 이어받는다. 선분은 사물들의 경계를 구성한다. 사물들은 비틀리고, 우그러지고, 쥐어짜인다.


2. 인간의 언어들에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명제는 없다.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낳은 호랑아들, 그것이 먹어 치운 사슴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 먹는 풀, 풀의 어머니인 땅, 땅을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152) 그렇다면 일상의 언어는 모두 제1원인, 부동의 원동자로서의 신에 봉착한다. 일상의 언어는 모두 하나의 단어로 수렴한다. "신", "신", "신", "신" 신이 있든 없든,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집합이 전체집합을 지칭하는 경우와 지칭하려는 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차이)


3. 관념론의 가르침에 의하면 '살다'와 '꿈꾸다'는 모든 면에서 동의어이다.

'살다'와 '꿈꾸다'가 동의어라면 '죽다'와 '꿈깨다'가 동의어이다. 꿈에서 깨려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살다'와 '꿈꾸다'는 동의어이다. 살려면 죽어야 한다. '죽다'는 '꿈깨다'와 동의어다......

그러므로 보르헤스는 '장소'에서 '비장소'로의 건너뜀이 아니라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heterotopie)로, 또 다른 장소에서 결국 '아닌 장소'(atopie)로 넘어간다. 길 잃은 공간에서 원래 있던 곳을 쳐다보면 모든 게 뒤틀어져 있다. 무질서한 존재들이 우글거린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aphasie)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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