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푸코, 말과 사물)
어찌저찌 연휴까지 버텼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다니, 아~~~주 기분이 좋다. 다시 백수가 된 이 느낌... 왜 난 진작 장래희망을 백수로 정하지 않은 걸까.
하루는 애인을 만났고, 이틀은 책을 읽었다. 보르헤스에서 푸코로 넘어왔는데, 생각보다 텍스트가 어렵다. 서문은 소설 비평으로 시작했다. 본문도 그림 비평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episteme: 지식의 구조, 질서)를 분석하기 시작하더니, 고전주의 시대로 와서 일반 문법과 언어의 기원을 탐구했다. 용어들이 어려워 한자 사전을 켜놓고 검색하며 읽었다.
두 세번 읽어도 모르겠으면 그냥 넘겼다. 대충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용들만 개괄하자면...
1. 르네상스 시대(16세기)의 에피스테메는 '닮음'이었다.
"닮음에 의해 상징 작용이 체계화되었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사물의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사물을 나타내는 기법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대지는 하늘을 반영했고 별에는 얼굴이 비치었으며 풀의 줄기에는 인간에게 유용할 비밀이 숨어 있었다."(45)
닮음은 유사성으로 사유된다. 닮음에는 장소의 인접(convenientia)와 경합(aemulatio), 유비, 감응이 있다.
1) 인접(부합): 가시적, 공간적 유사성에 의한 닮음 ex) 식물-짐승, 대지-바다
2) 경합: 떨어져 있는 것의 닮음 ex) 눈-해와 달(빛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입-베누스 여신, 코-유피테르의 홀이나 메르쿠리우스의 지팡이가 축소된 이미지, 인간의 지성-신의 지혜(불완전하게나마)
가. 경합에서 실재와 이미지를 구별하기란 흔히 불가능하다. "경합은 사물이 갖는 일종의 자연적 상시성이기 때문이다."
나.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는 대립 상태인 것은 아니다. 어느 하나가 더 약해서 다른 하나의 더 강한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 ex) 별은 대지의 풀보다 우세하기 떄문에, 풀의 한결같은 형태이자 불변의 전형이다.
여기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지식이기도 한 지혜에 의해 인간은 세계의 질서와 유사하게 되고, 마음속으로 세계의 질서를 답습하며, 눈에 보이는 별들이 반짝이는 실제의 창공을 이러한 방식으로 내면의 창공에서 회전하게 한다. 그러면 세계 안에 놓여 있던 이 지혜의 거울은 이제 반대로 세계를 감싸고, 이 거울의 커다란 고리는 하늘의 안쪽까지, 심지어 그 너머로 이르며,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별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처럼 온갖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공이 자신에게 있다."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51)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세계와 구별되지 않았다. 세계의 연속 속에서 세계에 포함되고 동시에 세계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3)유비: 사물들 자체의 비가시적인 유사성도 포함하는 닮음. ex)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별의 관계는 대지에 대한 초목의 관계, 생물이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생물의 관계, 광물과 다이아몬드가 암석에 대해 맺는 관계 (중략) 에서도 발견된다."(52)
세계의 모든 형상은 유비에 의해 서로 연관될 수 있다.
가. '인간'이라는 지점은 유비의 관계들이 통하는 특권적인 지점이었다. "인간은 이 모든 관계가 다른 공간으로 옮아가게 하고" ex) "가령 인간의 살은 흙이고, 인간의 뼈는 암석이고, 인간의 혈관은 커다란 강이고."
4)감응: 운동성의 원리. 동일성의 방향으로 변질시킨다. ex) 장례식에서 사용되는 애도의 장미
4-1)반감: 감응의 쌍둥이 형상 ex) 인도 쥐는 악어의 천적이다. 쥐는 거미와 앙숙이다.
감응-반감의 균형으로 사물들이 가까워지고 서로 닮을 수 있지만, 서로에게 흡수되거나 각각의 특이성을 잃지는 않는다. 이는 공간(경계도 반복도 유사성의 안식처도 없는)과 시간(그렇지만 동일한 형상, 동일한 종류, 동일한 요소의 무한한 재출현을 허용하는)이 있다는 사실의 이유가 된다.
2. 표징: 유사성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표지 ex) 한 사람이 화성과 적대적이라거나, 토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표지를 그의 몸이나 얼굴의 주름살에서 찾는 것.
1) 표징 없는 닮음은 없다. 파라켈수스 "신이 어떤 것들을 감추었다 해도, 보물을 땅속에 파묻은 사람이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보물을 표시하듯, 신도 모든 것에 표지를 해 두어 눈에 보이는 외부의 표적을 남겨 놓았다"
표징은 닮음의 비가시적 형태를 가시적 형태로 끌어낸다. 세계는 해독해야 할 문자로 뒤덮히고, 닮음의 공간은 방대한 책이 펼쳐진 것과 같아진다.
->16세기에는 기호학과 해석학이 유사성의 형태 속에 겹쳐 있었다.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서로 닮은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기호의 법칙을 찾아낸다는 것은 유사한 사물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존재물의 문법은 존재물의 주석이다.
3. 세계의 한계(소우주)
16세기의 에피스테메인 닮음은 지식의 끝없는 축적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소우주라는 유명한 범주가 작용한다. 신플라톤철학에도 있었겠지만, 초기 르네상스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 개념에는 두 기능이 있다.
1) 사유의 범주: 이중화된 닮음의 작용이 자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도록 한다.
2) 한계 설정: 서로 교대하는 유사성들의 수그러들지 않는 전진에 실제적이고 촉지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한다.
ex)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이 세계의 둘레가 모든 창조된 사물의 한계라는 것, 이 한계들 사이에서 닮음의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 16세기의 지식에서는 마법과 박학이 동일한 차원이었다. 세계는 해독해야 할 기호로 덮여 있고, 닮음과 친화력을 드러내는 기호 자체는 단지 유사성의 형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식은 해석이 된다.
4. 사물의 문자(ecriture)
16세기의 언어는 자의적 체계가 아니다. 사물 자체가 언어처럼 수수께끼를 감추고 드러낸다. 말도 해독해야 할 사물로 제시된다. 보이는 것과 읽히는 것은 구별되지 않는다. 글은 말보다 우월해진다. 지식은 한 형태의 언어를 또 다른 형태의 언어에 관련짓는다. 말과 사물의 일률적 평원을 복원한다. 모든 것을 말하게 하고, 모든 표지 위로 주석이라는 이차적 담론을 생겨나게 한다. 지식의 속성은 보는 것이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5. 언어의 존재(르네상스->고전주의)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동일성과 차이이다. 닮음의 에피스테메는 이제 문학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19세기부터는 문학이 언어의 존재를 다시 드러내게 하는데, 이 언어의 존재가 르네상스 시대 말기의 경우와 동일한 모습을 띠지는 않는다.
"실재로 끝없는 담론의 움직임을 정당화하고 제한했던, 그 절대적으로 최초인 본래의 말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 텍스트가 나날이 더듬는 것은 바로 이 공허하고 근본적인 공간의 행로이다."
/ 쓰다 보니 길어져서 여기서 한 번 끊겠다. 요약을 해도 어렵군. 부합, 경합, 유비, 감응, 반감..... 으악!!!!!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