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났다 사라진다
휴일은 감미롭다. 종일 집에 있었다. 잠깐 욕망을 채우거나 누워있을 때를 빼곤 계속 독서했다.
1. 신이 되자는 건 또다른 정신착란에 불과하다.
가. 그리스도는 삶과 욕망을 부정했다. 그는 비참과 죽음을 바랐다. 신에게 자신이 바라지 않은 삶은 모순이니까.
나. 그는 피안과 영생을 믿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다. 니체는 삶이 피안에 맞설 힘을 갖기를 바랐다.
라. 그러나 인간이 신이 되자는 건 또다른 정신착란에 불과하다. 1)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주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마태 27:46) 2) 말의 목을 붙잡고 우는 니체. 둘의 유비는 다음의 결론을 낳는다.
마.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착란을 택한 두 경우의 대표자들.
2. 파스칼은 이성으로 비이성을 택했다. 그는 정신착란의 자각자였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냈다. (예수회는 착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 영생은 한 번 뿐인 인생의 확장이다.
가. 연옥과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은 결국 한 세기 이내의 이 삶을 위해 존재한다.
나. 신자들은 그림자를 위해 실물을 바친다.
다. 끝을 무한히 미룰 수는 있다. 그러나 시작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4. 문학은 이곳을 버리고 저 너머로 나아간다. 시작과 끝은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다.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 나타났다 사라진다.
(세 번째 정신착란)
+ 동일성에 관한 소고
동일한 사물이 다른 공간에 있으면 둘은 수적으로 동일한가?
동일한 사건이 다른 시간에 일어나면 둘은 다른 사건인가?
두 동일한 세계가 다른 공간에서 같은 때 병존하면 둘의 동일성은 성립하나?
두 동일한 세계가 다른 시간에 그대로 되풀이되면 둘의 동일성은 성립하나?
독서도, 작가도, 나도 결국은 수단일 뿐이다. 나는 종이에 눈을 대고 활자 너머로 건너간다. (이곳이 진실인만큼 너머도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