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도,『말과 사물』읽기

by 왜살지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오면서 에피스테메가 바뀌었다. 닮음에서 동일성과 차이로. 그러나 어떻게 한 시대를 지배하는 지식의 질서가 물러나고 다음 질서가 등장하는가? 에피스테메의 불연속은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가? 그 내용을 지금부터 요약하겠다. 재밌겠죠? ㅎ


1. "17세기 초엽, 다시 말해 옳건 틀리건 바로크라고 불린 시대에는, 사유가 더 이상 닮음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유사성은 이제 지식의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의 계기이자, 누구라도 불충분하게 밝혀진 혼란의 장소를 조사하지 않을 때 직면하는 위험이다." (91-92)

17세기 초, 바로크라고 불린 시대부터 닮음은 벌써 자취를 감춘 듯하다. 광인과 문학의 영역으로 들어갔겠지. 이는 세르반테스가 가장 먼저 인식했고, 그 다음 데카르트와 베이컨이 발견했다. 먼저 데카르트 왈


"두 사물 사이에서 몇몇 유사점이 발견될 때, 두 사물 중에서 오직 하나에 대해서만 참이라고 인정된 것을, 두 사물이 사실상 서로 다른 지점에서조차, 그 둘 모두에 부여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습관이다."(92)

베이컨에게 유사성은 우상이다.


"동굴의 우상과 극장의 우상을 통해 우리는 사물이 우리의 학습 내용 및 구상된 이론가 유사하다고 및게 되고, 다른 우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들이 서로 유사하다고 믿게 된다."(92-93)


여기에 부족의 우상과 시장의 우상이 더해진다. 자연은 더 이상 닮음의 공간이 아니라 예외와 차이의 공간이다.


"그래서 자연에는 예외와 차이가 가득한데도, 도처에서 조화, 일치, 유사성을 발견하려 한다."(93)


데카르트에서는 닮음에서 측정에 의한 비교만이 살아남는다. 측정에 의해 치수와 순서만이 비교된다. 결국 닮음도 동일성과 차이에 의거해서 분석된다.


"측정은 유사한 것을 동일성과 차이의 계산할 수 있는 형태에 따라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측정에 의한 비교에서는 우선 나누기가 요구되고, 뒤이어 공통 단위가 적용되어야 하는 반면에," 유사한 것들이 단위와 동등 또는 불균등 관계에 의거하여 분석되고 나서, 자명한 동일성과 차이, 즉 추론의 영역에서 사유될 수 있는 차이에 의거하여 분석된다."(94-95)

데카르트는 세계를 좌표평면 위에 올려놓았고, 좌표평면은 두 가지 실체로 분리된다. 사유실체와 연장실체. 연장실체의 운동은 사유실체의 지배를 받는다. 연장실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사유는 연장을 측정하고, 계열화한다. 동일성과 차이는 사유된 좌표평면 상에서 자명해진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사유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오랫동안 지식의 기본적 범주(인식의 형식이자 내용)였던 유사한 것이 동일성과 차이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해체되기에 이르고, 게다가 비교는 측정의 매개에 의해 간접적으로든지, 마치 동일한 층위의 것인 듯 직접적으로든지 간에 질서와 관련이 있으며, 마침내 비교는 이제 세게의 정연한 배치를 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명령에 따라 당연하게도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로 말미암아 서양 문화에서 에피스테메 전체의 기본 배치가 변한다."(96)


에피스테메가 바뀌면 지식의 축적 방법이 변한다. 방법이 바뀌면 당연히 지식의 질서도 다르게 구축된다. 유비, 상응, 닮음이 분석, 비교, 열거, 범주화, 식별 등로 대체된다. 특히 식별을 하려면 비교를 넘어 차이가 탐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형도의 변화는 어떤 귀결을 낳았을까? 먼저 역사와 과학이 구별된다. 과학은 "직관들의 연쇄에 의해 내릴 수 있는 확실한 판단"이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추론을 읽었을지라도, 우리가 배웠을 법한 것은 결코 과학이 아니라 역사인 듯하다." 과학은 판단에 의해야 하고, 판단에 의하지 않으면 모두 과학에서 추방당한다.


또 언어의 지위 하락이 있다. 닮음의 에피스테메에서 세계 전체는 비밀을 지닌 해독되어야 할 텍스트였고, 글은 말보다 우위를 지녔다. 동일성과 차이의 에피스테메에서 언어는 분석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다. 투명하고 중립적으로 사물을 분석하기만 하면 언어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이제 텍스트는 진실의 기호와 형태에 속하지 않는다. 언어는 이제 세계의 형상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태초부터 사물에 부과된 표징도 아니다. 진실은 자명하고 분명한 지각 속에서 발현되고 표시된다. 말이 진실을 나타낼 수 있다면 진실의 표출은 마땅히 말에 주어져야 하지만, 말은 이제 진실의 표지일 권리가 없다. 언어는 존재물의 한가운데에서 뒤로 물려나 투명성과 중립성의 지대로 접어든다.(98)


이러한 귀결로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이 있다. 기계론과 수학, 마테시스에 대한 이해 방식이다.

1. 기계론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몇몇 지식 분야의 이론에서 전형의 구실을 했다.(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았을 것.)

2. 경험적인 것을 수학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노력.

이와 같은 노력은 천문학 분야나 물리학의 일각에서는 변함없이 계속되었고, 다른 분야에서는 산발적이었고, 직접 시도한 경우도 있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3. 마테시스(mathesis)에 대한 이해 방식.

마테시스란 모든 과학의 핵(데카르트), 판단의 형식과 대상의 추상적인 속성에 대한 공통 이론(라이프니츠)을 뜻한다고 한다. 어원은 배움, 인식, 전형적인 과학.

18세기 말엽까지 크기의 문제를 언제나 질서의 문제로 귀착시킬 수 있다는 불균형이 있는데도, 존재물들 사이의 관계가 질서와 크기의 형식 아래 사유되었다.

"그래서 마테시스에 대한 모든 인식의 관계는 심지어 측정할 수 없는 것까지도 포함하여 사물들 사이에 정연한 연속을 확립할 가능성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분석은 아주 재빨리 보편적인 방법으로서의 가치를 띠게 된다. 따라서 질적 수학을 확립하고자 했던 라이프니츠의 기획은 고전주의적 사유의 핵심 자체에 자리한다."(100)


또 마테시스와 관련하여 그때까지 형성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았던 여러 경험의 영역이 나타난다. 이 영역들의 특별한 도구는 대수학적 방법이 아니라 기호들의 체계이다. 말, 존재물, 일반 문법, 자연사, 부의 분석 등 질서의 과학이 출현했다. 이는 "당시에 서양 문화의 에피스테메 전체가 보편적인 질서의 과학과 관계를 맺지 않는 한 성립할 수 없었다."(100)


다음 요악은 기호에 대해 다루겠다. 고전주의 시대에 기호는 무엇일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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