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둘째 삼촌네를 제외하고 3남매가 근방에 모여 살았다. 우리가 모이는 곳은 외할머니가 계신 큰 외 삼촌댁이었다. 그때는 삼촌네 문지방을 마치 내 집 마냥 들락거렸다. 해가 지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외가 식구들과 많은 날을 한솥밥을 먹으며 지냈다.
어린 시절 추억을 하나씩 떠올릴 때면 늘 넉넉한 마음으로 반겨주었던 큰삼촌,큰숙모 부부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가끔 어린 시절 식구들과 함께 먹었던 그때 그 음식이 생각나곤 한다. 우리 엄마를 비롯해 외숙모들 모두 손맛이 좋았다. 가끔 그 맛이 그리워 흉내 내곤하지만 도저히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어쩜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은, 그 시절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추억일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 1월 1일 양력설을 쇠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해의 마지막날이자, 명절 하루 전날인 12월 31일에는 온가족이 외삼촌 댁으로 모였다. 이때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음식이 바로 어른 주먹만 한크기의 만두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나는 밀가루 향내 가득 풍기는 두툼한 만두피로 빚은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아빠와 오빠는만두피가 얇은 만두를 좋아했다. 그래서 본인이 먹을 만두는 최대한 얇게 밀었다. 큰 외삼촌은 고기 넣은 만두를 싫어하셨다. 큰삼촌을 위한 전용 만두소가 따로 있었다.삼촌의 취향대로 '고기 빼고!'
언뜻 보면 같은 음식이지만 식구들이 만든 만두는 이렇게 각기 달랐다.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만두에 담겼다. 식구들이 만들어 내는 만두의 모양도 다 달랐다. 뭐든 예쁘게 만들었던 작은 외숙모의 만두가 가장 예뻤다. 무심한 듯 툭툭 만들어 내는 엄마의 만두는 투박하고 소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디테일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모습은 꼭 우리 엄마를 닮았다.
주방 한쪽 커다란 솥에는 물이 끓는다. 식구들의 개성이 담긴 만두가 줄 맞춰 놓이고 쟁반이 채워지면 만두가 담긴 쟁반은 냉동실로 직행한다. 물이 끓는 동안 냉동실에서 몸을 굳힌 만두는 뜨거운 물속에서도엉키지 않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는 식초와 설탕 그리고 약간의 고춧가루로 맛을 낸 양념장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여기에 김장김치까지 곁들이면 완벽해진다.
2019년 마지막 날 문득, 이 날의 음식이 떠올랐다.
"여보 우리 만두 만들어 먹을까?"
"좋지!"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을 봐왔다.
뚝딱뚝딱 속을 완성했다.
"만두 만들자!"
만두소가 담긴 양푼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식구들 수만큼 숟가락을 꽂는다.
빚어진 만두를 올려놓을 쟁반 위에는 하얀 밀가루를 뿌리고 작은 종지에는 물을 떠서 놓는다. 아이들과 송편은 빚어 봤지만 만두는 처음이다.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준다.
"만두피를 손에 올리고, 이렇게 만두 속을 올리고, 물을 발라. 그래야 만두가 꼭 붙어.
제범 진지하게 아이들은 만두를 만든다. 몰두하고 열중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어느새 빈 쟁반은 우리 네 식구를 닮은 만두들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