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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Jan 27. 2020

시누이 밥상을 차리며

며느리의 설날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댁에 간다.
그리고 어느 해부터인지 시댁에 가면
모든 끼니를 내가 맡는다.

요리하기 좋아하는 나는
내가 한 음식을 시부모님께 해드리는 것이 좋았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허리가 안 좋은 어머니는

 부엌에 오래 서 계시는 것이 힘드시다.
요리 좋아하는 며느리에게 허리 아픈 시어머니는 자연스레 부엌을 내주었다.

누가 강요한 일도 아니고
억지로 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 년 중 딱 두 번
이 자연스러운 일이
불편하고 화가 나는 때가 있다.
바로 명절날이다.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신 나는
명절 당일에 친정 대신 언니네에서 명절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느 해부터인가
안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연휴기간 마지막 날까지
시댁에 머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시댁에서 돌아오는
형님네 식구들을
내가 접대하게 되었다.

형님은 분명 친정엄마에게 한 끼 얻어먹으며
쉬러 오는 것일 텐데

며느리인 내가 친정엄마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제도 그랬다.
형님네 식구가 온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시계를 보니 12시다.
오면 딱 점심 먹을 시간이다.
'차려진 음식을 먹겠다는 거잖아.'

자꾸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아이들이 더 있고 싶다 떼써도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내가 꼭 밥순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딸 키우는 엄마인지라
나중에 우리 딸도  명절날 시누이 밥 차려주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어쩌나?
생각이 너무 멀리 나갔다.

투덜투덜 불편한 마음을 불살기(불평 없이 살아보기: 내가 운영하고 있는 프로젝트) 단톡 방에 나누었다.
토닥토닥 내 마음을 보듬어 준다.

하지만 막상 형님네 식구들을 보니
마음이 나쁘지 않다.
난 또 그런 사람이다.
사람이 싫지 않은 사람이다.
기왕이면 웃는 낮으로 맞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큰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는 형님이 늘 걱정이셨다.
내가 만든 음식을 식구들 모두 좋아한다.
이것도 내 재주고 재능이지 싶었다.

돌이켜 보니
늘 남들보다 잘하고 뛰어난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도서관 수업에서 인연이 된
스터디 모임에서도
많이 아는 엄마가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그 모임에서 나눌 것보다 받을 것이 많은 나는 늘 미안하고 빚진 기분이었다.

블로그와 강의를 통해 만나
자기 계발에 한창인 모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나누고 알려준다.
많이 아는 자가, 많이 베푼다.
이것을 그들은 선한 영향력이라 불렀다.

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줄 수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다.

줄 것이 많은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사람은
마음도 부자인 사람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요리 잘하는 내 재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능력이 되니 내가 나눌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목록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받는 것보다
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올 한 해 내가 자신 있게 나눌 만큼
나만의 특화된 목록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p.s : 다음 추석부터 명절날 오후는 우리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겠다. 특별한 일정이 있건 없건  아침에는 시댁에서 출발할 것! 시누이 밥상을 차리며 드는 불편한 마음을 남편에게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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