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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Jan 07. 2020

사람이 떠나간 자리 남겨진 흔적들

지금,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모!” “옥이 이모!”


나에게는 이모가 없다.

하지만 내게도 분명 이모가 있었다.


 ‘옥이 이모’...

그녀는 큰 외숙모의 여동생이다. 어린 시절 외가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식구들이 모였다. 큰외삼촌은 엄청난 효자셨고, 큰 외숙모 역시 대단한 효부셨다. 당뇨병에 거동이 불편하셨던 외할머니는 외출이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외할머니가 외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효부 며느리를 둔 덕에 외할머니는 매 주말마다 자식들을 할머니 곁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다. 나는 외사촌들과 유년시절엔 형제처럼 지냈다. 자신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조카들을 외숙모는 항상 반겨주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숙모의 자식들만큼 예뻐해 주셨다. 나는 그런 외숙모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라고 불렀다.




큰 외숙모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큰 외숙모의 여동생을 나는 이모라 불렀다.  자연스레 식구들이 얼굴 볼 날이 많아지면서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훤히 알고 지냈고 가까이 지냈다. 큰 외숙모 여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와 10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외사촌 동생이 그녀를 ‘이모’라고 부르면 나도 ‘이모!’라고 따라 불렀다. 나도 이모가 갖고 싶었다. 이모 역시 나를 친 조카처럼 예뻐해 주었다. 그렇게 내게도 이모가 생겼다.




이모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시집을 갔다. 이모의 남편은 다부진 체격에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눈이 선한 증권맨이었다.  어린 기억에도 이모가 꽤 괜찮은 남자와 결혼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억 속 이모부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착한 이모만큼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기억된다.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이모가 참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모부는 어린 자녀 둘을 남겨 두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이모부의 죽음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하루아침에 미망인이 된 이모는 어린 남매와 남겨졌고, 이모는 혼자서 아이 둘을 키웠다. 참 씩씩하게 이모는 어려운 시절을 잘 헤쳐 나갔다. 그 당시 6살, 5살이었던 남매는 자라 성년이 되었고, 그 딸이 시집을 갔다.





이모가 건네는 청첩장을 받고는 한동안 먹먹했다. 이모가 살아온 세월을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되었던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을 이제는 피부로 느껴질 나이가 된 것이다.

얼추 계산을 해본다. 이모가 미망인이 되었을 그 시절, 이모의 딸과 아들이 지금의 나의 딸, 아들과 비슷한 또래였을 것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신부 대기실에 이제 막 서른이 된 이모의 딸이 앉아 있었다.  '꼭 내 딸 만했던 꼬맹이가 이렇게 컸구나' 7살의 내 딸과 고운 드레스를 입은 이모의 딸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마치 이들이 모습이 이모네 식구가 살아온 세월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찡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눈앞에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모가 입장할 때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모와 아이들이 견뎌냈을 시간이 떠오르며 눈물이 흘렀다.

 ‘참 예쁘게 잘 키웠다.’ 신랑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리는데 저 멀리 이모의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곱슬머리에 훤하고 시원한 이마, 정갈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 어린 시절 기억 속 존재하는 이모부의 헤어스타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쩜 머리스타일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누나의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모 아들의 모습에서 이모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헤어 스타일뿐 아니라 많은 것이 아빠와 꼭 닮았다. 아빠를 꼭 닮은 아들을 보며, 이모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모부는 이 세상에 없지만 분명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함께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사이. 이 슬픈 역설 앞에서 혼주 석에 앉은 이모 옆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이모!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이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나온 세월을 내가 ‘고생’이라는 단어로 일축해서 표현해도 되는지, 너무 무례하게 느껴져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지금 내가 건넬 수 있는 최고의 말 “이모 축하해요!”라고 말하며 이모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가장 어울리는 말. 이모에겐 지난날의 위로보다 성스러운 결혼식의 축하 인사가 더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 옥이 이모, 너무너무 축하해요!”




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떠난 자의 흔적과 남겨진 자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떠난 자리에 남겨질 나의 흔적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문득,

딸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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