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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Apr 25. 2020

마흔두 살 나의 생일

11년 전 엄마의 생일을 마주하다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습니다.     

마흔두 번째 생일,

이제 생일은 더 이상 설레지도 기대되지도 않은 평범한 날 중 하루가 된 지 오래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런 걸까요?

흐르는 세월이 쏜살같이 느껴지는 것, 1년이 지나는 속도가 점점 빠르게 느껴집니다.

빠르게 느껴지는 속도감만큼,

일상에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만큼

 나의 생일은 그저 그런 날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에겐 토끼처럼 귀여운 아이가 둘 있습니다.

8살, 5살. 아직은 엄마 품이 더 좋은 그런 나이.

이제는 조금씩 마음속 깊은 대화도 통하는 8살 딸내미와

이제는 조금씩 자신의 의견이 또렷해지고 있는 5살 아들내미가 있습니다.     


엄마의 생일은

평범합니다.

주말도 아닌, 평일의 생일은 더더욱 평범했어요.  

남편이 준비한 선물도 지난주에 미리 받았고요.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자주 먹는 미역국이라 끓일까 말까 고민이 되었지만)

초등 입학도 못해보고 온라인 개학을 맞아버린

온라인 1학년 첫째의 수업을 돕느라 정신없는

오전이 후딱 지나고,     

따님의 수학학원 라이드를 마치고

날이 좋아 밖에서 한참 놀다 오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들은 뭔가 속닥속닥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이 꾸며준

엄마의 생일 축하 장식     

“Happy birthday"

"42 생일 축하해 “

“손꼽아 기다리던 생일”     

아직 글을 쓸 수 없는 둘째는

자신의 마음을 한껏 선으로 표현합니다.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우리 집 반짇고리에는

특별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생일 축하 가렌다’     

11년 전 엄마의 마지막 생일에

썼던 가렌다입니다.     


엄마의 마지막 생일은

사실 아무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생일 이틀 전

주말에 언니와 형부는 여행을 가느라

조카를 우리 집에 맡겨 두었고,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과 나는

조카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들러 엄마의 생일을

미리 축하해주었어요.  

   

주말에 우리 마음대로

엄마의 생일을 미리 해놓고

진짜 엄마의 생일날은

아무도 챙겨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생일이었네요.

    

아이들이 반짇고리 함에 들어 있던

생일 축하 가렌다를 꺼내옵니다.

“엄마 이거 장식하자.”     

순간 저는 당황합니다.

엄마의 마지막 생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엄마는 이걸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 그래서 슬퍼.”    

이걸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첫째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계속 떼를 씁니다,

“이게 딱 좋은데, 이게 정말 happy birthday인데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자꾸 떼를 쓰는 둘째를 첫째가 혼을 냅니다.

“이제 그만해! 그거 내려놔. 여기 충분히 장식을 했잖아. ”

엄마의 슬픈 마음과 두려움을 첫째는 읽은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저항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왠지 나도 이걸 걸면

아이들과 이별하게 될까 봐

이 가렌다가 내게는 ‘엄마의 죽음’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아니야, 난 달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준비되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내야 했던

상처가

아직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애써 태연한 척

괜찮은 척했던

과거의 상처를 흘려보낼 때가 되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 걸어보자. 엄마 이제 괜찮아. 장식해보자.”

11년 전 엄마의 생일날 썼던 그 가렌다를

마흔  살의 나의 생일날

두 아이들과 함께 걸어 봅니다.     



이젠 괜찮습니다.

이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엄마를 바로 볼 준비

엄마를 진짜로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준비가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은 허투루 흐르지 않나 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만큼 제 마음도 성숙해졌나 봅니다.


    



    

저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엄마의 감수성과

엄마의 유쾌한 웃음과

엄마의 섬세함과

엄마의 손재주와

엄마의 소녀다운 감성

그리고 외모까지도   

  

이런 제가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 좋아졌습니다.     


감사해요.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참 좋아요.

그런 엄마를 닮은 내가 참 좋아요.    

 

고마워요. 엄마.

이런 나를 태어나게 해 주어서 그래서 고마워요.


오늘은 엄마 산소에 갑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토끼 같은 두 아이들과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인숙 씨...

여전히 내 마음속에 고운 당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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