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 내 집'
주관 없이 남의 말에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렸던 우리 부부는 '내 집'을 계기로 생각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내 집'은 아무 목적도 없던 우리 부부에게 목표를 심어 주었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었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집'을 소유하게 된 시점이라고 말하겠다.
"여보, 이젠 우리 집을 사야겠어."
2014년 2월, 전세 계약 만기일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집을 사고 싶어 했다. 분양 공고가 뜰 때마다 청약을 넣어보자고 여러 번 말하던 그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을 사자는 남편의 욕망을 못 본 척했다.
사실 나는 집을 살 마음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단을 내리기가 두려웠다. 집값이 내려갈까 봐, 집을 사고 난 뒤 더 좋은 집이 눈에 들어올까 봐 두려웠다.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봐 망설였다.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대출은 받고 싶지 않았고, 유산을 털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다. 결국,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이 변했다. 나도 내 집이 갖고 싶어졌다.
"그래, 집을 사자, 나도 예쁘게 꾸민 내 집에서 살고 싶어."
몇 년간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내 취향대로 꾸민 집에서 살고 싶다는 작은 욕망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더 이상 남이 쓰던 찝찝한 변기와 욕조의 때를 벗겨내는 일로 이사 첫날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장판과 취향에 맞지 않는 벽지를 더는 견디고 싶지도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싱크대에서 밥을 하고 원목 마루를 밟으며 살고 싶었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나는 집을 사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유산의 일부를 집값에 보탰다. (이때까지 남편에게는 상속받은 유산의 총액을 밝히지 않았다.) 드디어 남의 손에만 움직이던 유산이 '내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돈에도 '목적성'이 부여된 것이다.
남편은 더 이상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가 그의 안정 욕구는 더 커졌다. 이제는 정착할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이유였지만 남편과 나는 집을 사는데 의견을 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집을 사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그전까지 내 발목을 잡았던 '집을 사서는 안 되는 이유'보다 훨씬 소박하고 단순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마음을 정하고 나자 그다음은 알아서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롭 무어의 "지금 시작하고, 나중에 완벽해져라!"는 말을 좋아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 이것이 내 행동과 생각을 바꾸게 된 전부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대단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는 아주 작은 기대나 소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집을 사야겠다.' 마음먹은 것처럼.
"난 목동에 집을 사고 싶어. 여긴 아이 키우기에도 좋아. 언니와 오빠도 옆에 있고, 교통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아무튼 난 목동이 좋아."
나는 아무 연고 없는 분당보다 언니, 오빠가 살고 있는 목동이 좋았다. 목동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결혼 전까지 살았던 동네이다.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구석구석을 잘 알았다. 목동에 집을 사기 위해 새로 공부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선택은 내가 '잘 아는' 목동이었다.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신혼 초에 살았던 분당에 집을 사고 싶어 했다. 목동으로 이사한 후 춘천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남편은 투덜거렸다.
"진짜 멀다. 차는 왜 이렇게 막히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속에서는 '다시 분당으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목동 VS분당
남편과 내 의견이 갈렸지만, 두 곳 모두 우리가 살아 본 지역이었다. 나는 가장 익숙한 동네인 목동을 선택했고, 지방 출신인 남편은 첫 신혼집이었던 분당에 더 애착을 느꼈다.
남편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분당 지역의 아파트를 열심히 조사했다. 하지만 나는 목동 아파트를 사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살았던 동네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반면 남편은 분당에 집을 사야 할 이유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와 자료를 모았다.
내가 보기엔 이 아파트가 우리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아파트야.
남편의 설명은 이러했다.
1. 분당에서 몇 안 되는 20평대 아파트
계단식 아파트는 복도식보다 전용률이 넓게 빠진다. 이 말은 집을 넓게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23평임에도 불구하고 방 세 개, 앞 뒤 베란다까지 쓸 수 있는 구조는 커다란 메리트였다. (실제로 우리 집에 방문한 사람들이 20평 후반의 평수로 착각할 만큼 전용률이 아주 잘 빠진 집이었다.)
2. 인기 학군 배정 아파트
분당은 대체로 학구열이 높다. 하지만 그중에도 특별히 선호되는 지역이 있다. 우리가 선택한 아파트는 분당에서도 손꼽는 학군지에 해당하는 아파트였다.
3. 저 용적률 아파트
향후 재건축이 유리하다. 남편은 '저 용적률 아파트'라 재건축 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한 학군에 아이를 키우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건축까지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용적률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 또한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설명을 들으니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아파트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게다가 남편은 학군 지를 선호하는 내 취향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학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남편이 점찍어둔 그 아파트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사기로 결정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집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그날 계약금을 걸어두고 돌아왔다.
"너도 참 바보다. 남편 말만 듣고 아무도 없는 분당에 집을 샀어?"
"언니, 진짜 너무 착하다. 집 사는데 언니 돈도 보태고 결국 형부 말을 따른 거야?"
목동이 아닌 분당에 집을 샀다는 소식을 전하자 지인들은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들처럼 내가 착해서 남편 말을 들어줬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목동에 집을 사기 위한 어떤 준비도, 조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계획이 나보다 더 치밀했고, 설득력이 있었다. 남편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분당 아파트를 자세히 조사했다. 게다가 내 취향까지 반영해 집을 골랐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나는 목동 아파트를 사야 할 이유에 대해 남편처럼 일목요연하게 따져보지 못했다. 내가 착해서 남편의 말을 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찾아냈고, 집을 사도 좋을 객관적인 근거를 상세히 모았다. 이것이 우리가 목동이 아닌 분당에 집을 사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남편은 원하는 것을 위해 행동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