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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Dec 22. 2022

사투리 때문에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인천에 있는 모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게 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그나마 어렵사리 구한 학교였다. 실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이상한 시간이 배정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국어 받아쓰기를 한다고 했다. 분명 고등학교인데 말이다. 담당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학생들의 학력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 했다. 심지어 알파벹을 깨치지 못한 학생도 수두룩하단다. 수업시간에 진도를 나가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학년 국어 선생님이 나를 호출했다. 방송실에서 받아쓰기 문항을 낭독하고 채점을 부탁한다고 했다. 차마 거절하기 어려워 문항을 받아 들고 방송실 마이크 앞에 앉았다. 문항은 총 10개였고 쉬운 단어들이지만 받침이 틀릴 만한 문항도 더러 있었다. 닭고기, 떡볶이, 설거지 따위의 단어들이었다.  일전에 사투리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은 일이 있어 방송 전에 적이 긴장했다.


갓 상경했을 때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2층 주택 앞에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며칠을 굶어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 아이에게 좀 달라고 말했다.

"야, 과자 좀 도!"

"...."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과자를 씹으며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낯선 이가 말을 거니 경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친근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과자 조~옴 도~오!"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대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어떤 아저씨가 이상한 말 해!"

역시 수도권 사람들은 냉정하다. 과자를 포기하고 도망쳤다.


최대한 사투리 억양을 제거하고 1번 문항 '진달래꽃'부터 마지막 문항 '뒤웅박'까지 천천히 읽었다. 스피커를 통해 조금은 떨렸지만 또렷하게 나오는 내 목소리에 스스로 감탄하며 읽기를 마쳤다. 잠시 뒤 선생님이 답안지를 걷어왔고 채점을 시작했다.


역시나 만점을 받은 학생은 반에서 한 둘에 불과했다. 예상했던 제각각의 오답이 줄줄이 쏟아졌다. 그런데 마지막 문항은 태반이 거의 동일한 오답이었다. 분명 '뒤웅박'이라고 했는데 '듕박'은 뭐지? 채점을 마무리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아니야! 그때로 돌아간다면 묻고 싶다. (탕웨이 버전으로)"내 발음이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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