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대학교 2학년 2학기 중급 영어회화 시간이었다. 아직 영어회화엔 자신이 없는 터라 강의실 뒤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자못 긴장했다. 캐나다에서 온 40대 원어민 여교수가 담당이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홀로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첫 시간부터 수업은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그녀의 속사포 같은 영어는 당최 알아먹기 힘들었다.
내 뒤에는 낯선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분명 우리 과 학생은 아닌 듯하여 정체를 물었다. 공대생이라며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회화 수업을 신청했다고 했다. 그는 수업시간 내내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게 물었다. 분명 영어실력이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했다.
강의 초반 교수가 가방에서 프린트물을 꺼내 나눠주었다. 내가 받은 종이가 마지막이었다. 뒤쪽에 앉아 있는 공대생에게 프린트가 모지란다고 말했다. 그는 무척 난감해하며 손을 들었다. 교수가 그를 보고 말했다.
"What can I do for you?
그는 얼굴이 싯뻘개져 더듬더듬 말했다.
"I don't.... I.... paper.... one...."
그의 말을 알아챈 교수가 앞으로 나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가 앞으로 나가자 교수가 가방에서 프린트물을 더 꺼내다 그만 땅에 몇 장을 흘렸다. 그리고 이어진 외마디 비명!
"Oops!"
"아, 없어요?"
'Oops'를 '없어'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다. 공대생이 돌아서 들어오려는 걸 교수가 붙잡고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수업에서 꼴찌를 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과목 변경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