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모 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남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가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미국인이었고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2년 간 같이 일했기에 아쉬움이 컸다. 그가 좋아하는 삼겹살로 조촐한 쫑파티를 할 요량으로 학교 인근 식당으로 갔다.
중년의 여주인이 있는 식당은 한산했다. 가게로 들어서는 우리를 훑어 내리는 주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벽에 걸린 메뉴를 보고 있는데 주인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허공에 두 손으로 네모 모양을 그렸다. 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다시 한번 크게 네모를 그렸다.
눈치 빠른 원어민이 대뜸 말했다.
"Oh, I see. Don't worry. I have money."
그제야 그 뜻을 알았다. 그녀가 허공에 그린 네모는 지폐, 곧 돈이 있냐는 뜻이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먹튀를 한다는 뉴스가 간혹 있었다. 주인은 흑인인 원어민을 보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지를 알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었다. 그 원어민이 백인이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을까.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 주인을 대신해 내가 사과를 했다. 원어민은 종종 겪는 일이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가 났다. 원어민 이 친구는 흑인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럼 난 뭐지? 그녀는 나도 돈 없는 외국인 노동자로 생각한 것이었을까? 물어볼 수도 없고 그 분노의 불길로 삼겹살을 구웠다. 맛은 있었다.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그럴 수도 있지 자위하며 주인을 용서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순수 국내산임은 알려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주인도 사람인데 미안해하지 않을까.
계산대에서 카드를 건네며 나는 힘주어 또렷이 말했다.
"자~알 먹고 갑니다~아."
가게문을 나서는데 등뒤로 주인의 말이 들렸다.
"우리말 잘하네."
두 번 다시 그 가게엔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