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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Jan 16. 2023

선글라스를 썼을 뿐인데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긴 우산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아내를 따라가는데 선글라스를 파는 곳이 보였다. 안 그래도 운전할 때 찡그리다 보니 눈가 주름이 진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이것저것 골라 써보다 미러형 선글라스를 샀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연예인이 따로 없달까. 아내는 파리 같다며 놀렸다. 내친김에 안경을 쓰고 백화점을 돌았다. 흐린 날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니 사람들이 미친놈 보듯 흘깃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탓을 때였다. 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여성분이 말했다.

"몇 층 가세요? 눌러드릴게요."

맹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녀가 머쓱해 할 것 같았다.

"아, 네. 4층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버튼 누르는 것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았다. 순간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의 시선엔 동정심이 묻어났다. 연예인이 맹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내도 쪽팔리다는 듯 한 발짝 비켜섰다.


4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홍해처럼 길을 텄다. 별 수 없이 우산을 두드리며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아내가 외쳤다.

"당장 벗어!"

그리고 식빵언니보다 강한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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